- 한때 100곳 책방 현재 34곳 뿐
- 점주 대부분 고령… 명맥 끊길 판
- 중구 “매수자에 보존 협조 요청”

국내 유일 헌책방 거리인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의 쇠퇴가 가속화할 위기에 처했다. 책방 8곳이 입주한 건물이 매각돼 아파트로 재건축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부산문화의 상징’인 책방골목 보존을 위해 관계기관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28일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시민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이원준 프리랜서

28일 오전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책방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헌책을 살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만난 책방골목 상인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깊었다. 단골서점 학우서점 동화나라 충남서점 서울서점 대동서점 남양서점 현우서점 등 책방 8곳이 세든 건물이 최근 팔리면서 새 주인이 3개월 안에 나가 달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당시 피난민이 생활을 위해 가져온 책을 팔고, 피난 온 학교의 교사와 학생이 책을 사들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헌책 시장이다. 한때 100여 개 점포가 영업할 정도로 활기를 띠었지만 지금은 34곳만 남았다. 그런데 이 중 8곳이 한꺼번에 문을 닫게 될 처지에 놓인 셈이다.

충남서점 남명섭 사장은 “40년간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갑자기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으니 밥이 안 넘어가는 지경”이라면서 “이 건물에 입주한 책방이 골목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데 보수동 책방골목의 명맥이 끊기면 부산은 문화 불모지로 전락할 게 뻔하다”고 말했다. 현우서점 김인조 사장은 “책방 운영이 보따리장수도 아니고 책이 많은 곳은 100만 권에 달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 지 난감하다. 서점 주인 대부분이 고령이라 책방 명맥을 잇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만일 건물주가 새 건물을 지은 뒤 1층에는 서점이 입점하는 방안을 제시하더라도 현재 상인들은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건물은 보수동 책방골목의 초입에 위치해 간판 역할을 해왔다. 매수자는 노후화한 기존 건물을 허물고 지하 2층, 지상 18층 규모의 근린생활시설과 아파트를 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허양군 회장은 “단순히 서점이 문을 닫는 게 아니라 부산의 문화유산이 사라진다는 뜻”이라며 “보수동 책방골목은 지난해 부산시가 선정한 ‘부산 미래유산’으로 최종 선정됐고, 올해는 전통시장 등록까지 마쳤는데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행정당국은 물론 정치권이 앞장서서 보전 문제를 놓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 미래유산은 시민이 스스로 문화유산을 지키고, 그것을 통해 부산을 알림으로써 지역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가 추진한 비지정 문화유산 관리·활용 제도다. 중구의회 김시형 의원은 “지난해 말 중구청이 책방골목을 활성화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었지만 구청 차원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크다”고 지적했다. 중구 관계자는 “구에서 사유재산권 행사를 법적으로 제한하거나 강제할 순 없지만, 책방골목 보전을 위해 매수자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