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는 그저 훑어보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취재를 하는 여정은 대충 훑는 걸음이었는데 막상 글로 쓰기 시작하자 순간순간 숨이 멈춰졌다. 진감선사 비문에 담긴 이야기는 시대와 종교를 초월한 ‘참 사람’의 이야기다. 누구라도 한 대목, 한 대목 끊어 읽으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마음이 숙연해지리라.

중국 허베이성(하북성) 승덕시 열하산장 라마불교 상설 무용극. 언어 없이 진행되는 이 공연은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사실 어려운 글이다. 당장은 한문이니 어지간해서는 읽기조차 어렵고, 혹여 관심이 있어도 서체의 아름다움이나 느낄 정도다. 게다가 꽤 장문이라 아무리 쉽게 풀어써도 제대로 읽어 가슴에 품기 버겁다. 그럼에도 비문에 담긴 구절들의 울림은 깊고, 감동은 널리 전하고 싶어진다.

‘선사’라는 경칭은 종교에 초점을 두게 한다. ‘위대한’ ‘성스러운’은 한발 떨어져 우러르다 돌아서게 한다. 그런데 고운(孤雲)이 길잡이를 하면 진감은 의지하고, 품고 싶은 ‘사람’이 된다. ‘범패’라면 불교의 음악이다. 그렇지만 ‘가곡’ ‘판소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성악 중 하나라면 그저 ‘노래’가 된다. 서양예술에 종교의 영향은 지대하다. 그럼에도 종교를 넘어선 세계인의 문화와 예술이 되어 2000년 시간에도 여전하다. 최치원을 앞세워 쌍계사를 취재하며 문득 그런 보편적 문화의 문 앞에 선 기분이었다.

아직 불가는 교의의 무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자치단체가 먼저 앞장서보는 건 어떨까. 범패에서 불교의 무게를 덜어내 편곡하고, 비명의 이야기 중 ‘교훈’ 말고 ‘감동’으로 뽑아낸 몇 가지 버전의 작은 음악극, 아이들이 좋아할 유쾌한 소극, 음악과 어우러진 무용극 등이 상설되면 오래지 않아 뿌리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처님도 그쯤은 눈감아 줄 테고. ‘미스터 트롯’ 출신 소년 정동원도 있지 않은가.

하동, 참 좋은 도시다. 화해와 포용의 문학이 있고, 장터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자연이 있는, 보기 드문 조건이다.

화개에서 서비스로 제공된 티백 녹차 두 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며칠 뒤 무심히 마시는데 첫 모금에 눈이 번쩍 떠졌다. 중국에서 차라면 최치원만큼 섭렵했는데, 티백 현미녹차에 놀라다니! ‘왕의 차’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다만 왜 ‘왕’이고 ‘차’인지 수긍할 뒷받침이 없어 애쓰는 중이다. 아, 당장은 감동의 문구에 그림을 더한 셔츠며 에코백 등의 관련 상품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