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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1> 한 끼 줍쇼

“밥 줄테니 앉으소”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단절로 입은 상처…우리에게 필요한 건 연민 아닌 공감

  • 국제신문
  •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  |  입력 : 2019-12-31 23:30:13
  •  |  본지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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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의 시대다. 우리 대부분은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산다. 관심이라도 가졌다가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라는 핀잔이 날아오기 일쑤. 단절하면 편한 대신 외롭다. 고립된 상태에서 취업 실패와 경제적 빈곤에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젊은이도 증가세다. 단절의 시대엔 미국 지식인 수전 손택의 말처럼 ‘연민’ 대신 ‘공감’이 필요하다. 타인의 고통을 TV로 시청하며 ARS(자동응답시스템)로 3000원을 기부하는 연민이 아닌, 이웃의 고통을 내 현실 속에서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 2020년 국제신문은 공감 스위치의 ON 버튼을 눌러 부산에 따뜻함(溫)을 전하는 다양한 신년기획을 준비했다. 카메라를 들고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고 위로를 전할 작지만 따뜻한 사연도 찾아 나선다. 거친 경상도 사투리 속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는 부산을 기대하며…. 부산 온(ON·溫) 프로젝트, 레디 액션!
   
왼쪽부터 백반집 주인 정분자 씨, 칼국숫집 주인 김정순 씨, 베트남 쌀국숫집 주인 정미카엘 씨
밥 한 끼 구걸은 쉽지 않았다. 추위와 공복의 고통보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다. 한참을 서성이다 겨우 용기를 내 부산의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장 혼자였다. 기자는 신분을 속이고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밥을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손님인 줄 알았는데 구걸하는 30대라 실망했을까. 사장은 시큰둥하게 거절하며 등을 돌렸다. 문을 나서는 기자의 등에 비수 같은 사장 혼잣말이 날아와 꽂혔다. “멀쩡하게 생겨서 왜 저렇게 다니는지 모르겠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졌다.

지난달 13일과 19일. 기자는 ‘밥을 구걸하는 30대 청년’을 연기했다. 역할 몰입을 위해 ‘취업 실패. 일용직 전전. 일을 못 구해 밥을 굶음’이라는 상황에 처했다고 머릿속에 그렸다. 몰래카메라 촬영을 위해 영상팀도 동행했다. 이틀 동안 취재팀은 부산 동래구 사직동과 온천동의 작은 식당 6곳을 찾았다.

   
부산 동래구 사직동의 한 백반집에서 공짜밥을 먹고 있는 박호걸 기자.
처음 밥을 얻어먹으러 간 곳은 사직동의 한 백반집. 주인으로 보이는 60대 아주머니에게 공짜 밥 한 끼를 청했다. 정분자(64) 씨는 “앉으소”라고 짧게 대답했다. 단 3음절의 짧은 승낙에 기자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정 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 주방으로 가 한 상 차리기 시작했다. 주방 안에서 생선 굽는 소리와 양철 쟁반에 반찬 그릇 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의 밥상을 차리는 듯한 따뜻함이란.
양철 쟁반에 따뜻한 밥 한 끼가 담겨 나왔다. 밥그릇에 꾹꾹 눌러 담은 밥은 ‘많이 묵고 힘내소’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묵국을 비롯해 생선구이·오징어무침·감자볶음…. 반찬이 8개나 됐다. 후루룩 국물 한 번 들이켜고 허겁지겁 음식을 해치웠다. 밥알 한 톨 남기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기자는 “내일 일을 나가면 밥값 내러 다시 오겠습니다”고 했다. “고마 열심히 사소.” 정 씨가 건네는 말엔 안쓰러움이 묻어났다.

잠시 후 지갑을 챙겨 다시 그 백반집으로 향했다. ‘밥값을 내러 왔다’고 하자 정 씨는 “돈 주러 왔다고? 어떻게?”라며 놀랐다. 취재 취지를 설명하고 인터뷰를 청했다. 딸과 함께 김장김치를 맛보던 그는 “젊은 사람이 밥 구걸을 해서 ‘일자리가 진짜 없긴 없나 보다’고 생각했다. 나도 자식이 있으니 그냥 내보내기가 어렵더라”며 웃었다. “저렇게(밥 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남한테 고개를 숙이는 거다. 마음이 어땠겠나. 이왕 주는 거니 손님에게 내는 상과 똑같이 차려줬다. 올해는 일자리가 많아져 젊은 사람들이 더 힘내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후 들른 세 곳에선 문전박대를 당했다. “남는 밥이라도 없느냐”는 말에 “저기 부잣집에 가보이소. 남는 밥이 없습니다”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 식당으로 향하며 ‘가뜩이나 힘든 자영업자에게 공짜 밥을 청하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하며 자위했다. 그래도 마음 상처는 쉬 아물지 않았다.

다섯 번째로 들른 곳은 온천동 한 분식집. 아침부터 굶었다는 말을 듣자 주인 김정순(72) 씨는 “칼국수 한 그릇 드릴까”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칼국수가 나오길 기다렸다. 가난은 죄가 아닌데 괜히 주눅 들었다. 시선을 식탁에 고정한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때 김 씨의 딸이 김치와 단무지를 내왔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김 씨에게 “사실은 취재 중”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총각 웃기네”라며 웃었다. 그는 “딸이 총각 보고 나한테 ‘돈 있는 사람은 너무 많고, 없는 사람은 너무 없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하더라. 새해에는 이 땅의 청년 모두 힘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사직동의 한 쌀국수 가게. 공짜 밥 한 끼를 청하자 종업원이 사장을 불러왔다. 주방에서 덩치 좋은 30대 남자가 나왔다. 당황했지만 용기를 내 “오늘 일을 나가지 못해 아침부터 굶었다. 남는 밥 없느냐”고 물었다. 사장 정미카엘(30) 씨는 “앉으세요. 드릴게요”라더니 총총히 주방으로 사라졌다. 앞서 몇 번 경험했지만, 밥 구걸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주방에서 투닥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나 때문에 싸우나’ 싶어 걱정했는데, 웃음이 터졌다. 글쎄 사장과 직원이 “든든한 밥이 좋다” “따뜻한 국물이 낫다”며 언쟁하는 게 아닌가. 결국 직원이 나와서 “볶음밥하고 쌀국수가 있는데 어떤 게 좋으세요”라고 물었다. 밥을 구걸하러 와서 취향대로 주문까지 하게 된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맛있게 한 끼 먹고 정 씨에게 취재임을 알렸다. 그는 “예전에 식당을 하시던 어머니가 ‘돈 달라는 사람은 거절해도 밥 달라는 사람은 꼭 드려라’고 하신 게 기억났다”고 했다. 취재를 위한 연기였지만 밥 구걸할 때는 나도 모르게 주눅 들었고, 사장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세상은 살 만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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