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임자 복수 승인시스템 있지만
- 10년 관리 직원 믿고 감시 소홀
- 비밀번호 내부 공유 등 보안 허술

은행이 운영하는 대여금고에 보관된 현금을 은행 직원이 빼돌린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여금고 보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은행에서는 보안을 위해 복수 확인 시스템, 안면인식을 비롯한 생체인식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있으나 은행 직원이 자체 보안망의 취약점을 노린 범행은 막기 어려워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A은행 대여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수억 원이 사라졌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수사에 나섰다고 3일 밝혔다. B씨 부부는 2015년 A은행 대여금고 2개에 약 6억 원의 현금을 보관해왔으나 지난 9월 사라진 것을 알게됐다. A은행은 자체 감사 결과 B씨 부부의 자산을 10여 년간 관리해온 C팀장이 최초 등록된 고객의 지문을 지우고 자신의 지문을 등록해 놓은 것으로 파악했다.

A은행은 지문 변경과 같은 변동사항이 있을 경우 직원 여러 명이 이를 확인하는 복수 확인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으나 C팀장이 오랫동안 B씨 부부 자산을 관리해온 터라 다른 직원들이 이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감사 결과 밝혀졌다.

현재 C팀장은 보직 해임 상태다. 경찰은 대여금고에 보관 중이던 현금과 함께 예금 약 6억 원도 함께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A 은행 관계자는 “해당 직원이 다른 직원을 속여가면서 자금을 횡령한 사건이라 사법 처리가 끝나면 은행 차원에서 고객 돈을 배상하겠다”고 해명했다.

은행권의 말을 종합하면 개인 대여금고는 최소 수억 원 이상을 예치한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주로 현금, 채권, 귀금속 등을 보관한다. 고액 자산가들이 대여금고를 이용하는 이유는 자신의 자산 규모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다. 고액을 보관하는 만큼 보안도 철저한데, 과거에는 2개의 열쇠를 동시에 꽂아야만 열 수 있었다. 금고 명의자와 은행 직원이 각각 열쇠를 보관하는 방식인데 고객의 열쇠 분실을 우려해 은행에서도 여분의 열쇠를 보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 발달로 지문 인증 방식은 물론 안면 인식, 지정맥, 장정맥 같은 생체인식 기술이 적용된 대여금고를 늘리는 추세다.

하지만 최첨단 대여 금고라고 하더라도 은행 자체 보안망의 취약점을 노린 범행을 막기는 어렵다. 통상 여러 명의 책임자 승인을 거쳐야 할 경우 제각각 비밀번호를 설정하게 되는데, C팀장처럼 오랫동안 자산을 관리하는 등 신뢰관계가 쌓이면 은행 내부에서도 비밀번호를 공유하거나 감시를 소홀히하는 등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복수 승인 보안 시스템도 무용지물이다.

지역의 한 은행 관계자는 “A은행 사례처럼 비슷한 보안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다른 은행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희 김민정 기자 mah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