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민주사를 되짚는 학술대회에서 “부마민주항쟁은 ‘4·19의 길’이 ‘5·16의 길’을 이긴 사건”이라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부산시는 31일 부산시청에서 ‘부산지역 민주화운동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발표한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차성환 상임위원은 “부마항쟁은 5·16의 길이 크게 우세한 상황에서 4·19의 길로 극적으로 전환한 대사건”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길’ 비유는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의 저서 ‘4·19와 5·16’에서 빌려왔다. 이 책에서 김 원장은 “4·19 당시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란 국민적 염원을 근대 산업국가로 승화시킨 것이 5·16”이라고 주장했다. 차 위원은 이를 비판하며 “쿠데타 세력이 정당화를 위해 쓴 수사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발제문을 보면 차 위원은 ‘4·19의 길’을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정의했다. 반면 ‘5·16의 길’은 지도자 주도의 정치적 권위주의로 상황을 타개하는 방식이라고 규정했다. 1972년 10월 유신은 ‘5·16의 길’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계기였다. 당시 정권은 새마을운동·전통문화정책·공교육 등으로 그들의 ‘길’이 정당하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했다. 4·19의 길은 잊으라고 강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마항쟁은 4·19 정신이 국민 의식 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항쟁의 주동자인 당시 부산대 학생 정광민 씨는 1979년 4월 19일 혁명 19주년에도 똑같은 하루가 흘러가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4·19 19주년’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교내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경남대 학생 정인권 씨는 부산의 항쟁 발발 소식을 듣고는 “3·15(1960년 3월 15일 경남 마산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 영령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자”는 말로 시위 참여를 독려했다. 차 위원은 “항쟁과 4·19는 인간 존엄성 회복이라는 본질적 차원에서 같다. 4·19의 기억은 저항의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