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들 정치적 싸움 이유로
- 애들 상처줘선 안돼” 게양 지시

반일 감정이 고조되는 가운데 부산 기장군에서 열리는 국제 스포츠 행사와 관련해 일본 국기를 게양하는 문제를 두고 ‘해프닝’이 빚어졌다. 담당 공무원이 악화된 한일 관계와 주민 민원을 고려해 거리에 걸었던 일장기를 내리자 군수는 “청소년 대회에 어른들의 정치 논리가 개입돼서는 안 된다”며 국기를 다시 게양할 것을 지시했다.

8일 기장군에 따르면 지난 5일 제2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기장군 일대에 내걸린 참가국 12개국의 국기가 내려졌다가 다시 올라가는 일이 벌어졌다. 기장군은 대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참가국 선수단을 환영하기 위해 군청 앞 죽성교와 정관읍 중앙교 등 2곳에 참가국의 기를 게양했는데, 이를 모두 내렸다가 다시 내건 것이다.

참가국에 포함된 일본의 국기가 펄럭이는 걸 본 주민들이 군에 민원을 제기한 게 발단이 됐다. 주민은 “화이트리스트 배제 때문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마당에 지역에서 일장기가 휘날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군과 정관읍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했다.

항의가 잇따르자 담당 공무원은 일장기만 내릴 수 없어 참가국의 국기를 모두 내리고 원래 걸려 있던 새마을기를 올렸다. 군수에게 보고되지 않은 상황에서 담당자가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내린 조처였다.

이후 오규석 군수는 야간 현장 시찰 도중에 참가국 국기가 내려간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깃발을 올리도록 지시했다. 오 군수는 “국제대회 관행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청소년 스포츠 대회인데 어른들의 정치적 이유로 참가국의 깃발을 내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군수는 이날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는 스포츠 꿈나무의 행사다. 정치적 갈등으로 꿈나무가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며 “스포츠는 국경과 이념, 인종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장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수탈 피해가 큰 지역이다. 일본의 ‘반칙’에 분노를 금할 수 없고, 주민의 공분에도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반칙에 정정당당하게 대응하는 게 이기는 길임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기장군은 일장기 게양에 불만을 제기하는 주민을 상대로 청소년 대회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설득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군은 만일 있을지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일본 선수단의 숙소와 경기 일정, 이동 동선, 경기장 안전 등 전반에 걸친 경호와 안전 조치 방안을 경찰과 협의했다.

한편 이번 대회는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기장군 일원에서 열린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