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각형 책상, 정글짐 같은 교실
- 기존 모습과 틀 파괴한 공간
- ‘미래직업’ 관련해 과제 내주니
- 자유로운 자세로 창의적 사고

- 밝고 말랑말랑하게 꾸민 도서관
- 벽 속 독서실 등 책 흥미 높여
- 학부모들 동아리 위한 카페도

아이들이 가정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학교다. 하지만 어떤 건축가는 학교와 가장 비슷한 건물이 감옥이라고 했다. 창의성이 전혀 자랄 수 없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머무르게 하고는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얘기다. 자조적인 농담으로 ‘21세기 아이들을 20세기 교사들이 19세기 건물에서 가르치는 게 현재 한국’이라고도 한다.

	부산 영도구 남항초등학교 꿈누리 교실 중 한편은 상자를 쌓고 기어서 들어갈 수 있는 아지트처럼 만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앞쪽 학생 두 명은 30년 후 미래의 내가 희망했던 직업을 가졌다고 상상한 뒤 모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꿔보려는 교육 당국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미래교육’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공간과 그에 맞는 교육과정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부산시교육청이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첨단 미래 선도 시범학교 사업의 첫 성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19일 첨단미래 선도 시범학교로 지정된 영도구 남항초등학교에서 공개수업을 열었다.

■교과서, 공책, 필기구 없는 수업

	아이들이 다른 친구가 클래스팅에 탑재한 자신의 꿈 내용을 보고 응원하는 선플 달기를 하고 있다.

이날 수업은 창조적 체험학습(창체)으로 나의 장래 희망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해보는 걸로 채워졌다. 진로교육과 연계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6학년 2반 학생들에게는 4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30년 후 미래의 내 직업을 노래가사로 표현해 가사 바꿔 부르기, 30년 후 내 직업을 나타낼 수 있는 명함 만들기, 미래의 내가 실현한 직업인으로서 하는 가상 인터뷰, 30년 후 나의 희망 직업으로 일하며 쓰는 미래일기가 그것이다. 아이들은 태블릿 PC를 활용해 이 과제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교사가 15분 동안 수행시간을 주고 학생들은 조를 지어 자신이 원하는 공간으로 찾아 들었다. 앉은 자리에서 조 모임을 하거나 따로 조 모임을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가기도 하고, 정글짐처럼 꾸며진 자리에서 배를 깔고 엎드리거나 양반다리로 앉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책상도 자세히 보니 위가 좁은 평행사다리꼴이었다. 필요하다면 책상끼리 마주 붙이거나 육각형으로 만들어 즉석 조 모임용 책상으로 만들 수 있었다. 교단에서 교사가 칠판에서 필기를 하고 일렬로 앉은 아이들이 받아 쓰는 예전의 교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교육부의 학교 공간혁신 사업과는 별도로 첨단 미래학교는 공간의 변화와 함께 교육과정까지 미래에 걸맞게 달라지게 한다. 공간이 바뀌면 아이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처럼 달라진 공간을 교육과정 혁신의 파트너로 생각해 두 가지가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의적인 사고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 공간이 디지털 디바이스를 활용해 수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게 뒷받침 해준다. 아이들에게 학교나 교실이 더는 지루한 곳이 아니라 오래 머무르고 싶고 재미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미래교육의 핵심, 집단지성

	영도구 남항초의 반딧불이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다. 벽 속 다람쥐통 같은 공간이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다.

아이들이 과제를 교육용 앱 클래스팅에 탑재할 때마다 ‘티팅’ ‘팅팅’과 같은 경쾌한 알림음이 울렸다. 교사가 아이들을 자리로 다 불러모으더니 화이트 보드에 클래스팅을 띄워 놓고 함께 보기 시작했다. 과제를 수행할 때 조 모임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발전시켰던 것을 각자가 정리했고, 그걸 학급 내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다시 한 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명함을 보니까 어떤 직업을 선택한 것 같아?” “요리사요!” “왜 그렇게 생각했어?” “명함에 조리도구가 그려져 있어서요!”

요리사가 되고 싶다던 아이가 쓴 미래 일기에는 “오늘 손님이 많아 힘들었지만 내가 원했던 일이라 더욱 보람됐다. 내 음식을 먹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니 무척 즐거웠다”며 긍정적인 직업관을 드러냈다. 자연스럽게 각 직업인으로서 가져야할 직업 윤리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30년 후 자신의 미래 직업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가상 인터뷰한 것도 인상 깊었다. 태블릿 PC로 짧은 인터뷰 영상을 찍어 업로드하는 것까지 아이들은 마치 스마트폰을 다루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서로의 모습을 찍어 필요한 부분만 편집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과제를 단순히 발표하는 데 그쳤지만 이 수업에선 친구들의 과제에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선플 달기로 마무리하며 서로의 작업 과정이나 성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여기서 좀 더 발전되면 디지털 공간에서 정보를 생산하고 올바르지 못한 내용을 걸러내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까지 확장할 수 있게 된다.

■달라진 공간, 변하는 아이들

	학부모 동아리가 활동하고 학교 방문 때 학부모 대기공간으로 이용되는 카페.

남항초 1층 교실 2칸은 ‘꿈누리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형태의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변화했다. 이와 함께 바로 옆 학교 도서관도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전엔 마치 독서실과 같은 1인용 독서대가 즐비했지만, 이것들을 모두 치우고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올라가서 마음껏 드러눕거나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그중에서도 벽을 파낸 것 같은 효과를 주는 자리가 가장 인기다. 마치 오래된 나무에 생긴 구멍이나 놀이기구인 다람쥐통처럼 생겨서 아이들이 눕거나 앉아 자유스러운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아이들이 밟거나 앉았을 때 편안하도록 소재도 말랑말랑하고 색상도 파란색,핑크색 등 다양하고 밝은 채도여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동화 속 같은 느낌이다. 이전의 학교 도서관에 비해 아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진 것도 당연하다.

이와 함께 남항초는 학부모가 학교를 찾았을 때 대기하거나 학부모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카페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잘 꾸며진 커피숍처럼 아늑한 분위기로 학교 구성원으로 학부모를 제대로 대접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의미로 보였다. 박진홍 남항초 교장은 “부산형 미래학교의 터를 만드는 사업에 함께할 수 있어 무척 기쁘다. 사람과 공간, 테크놀로지를 연결하는 첨단미래 선도 시범학교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는 학습공간 구성과 적합한 수업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