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당 대전료 50만 원 생계유지 못해
- 마산 유흥업소·서울 헬스클럽 등 전전
- 결국 노모 계신 고향으로 무일푼 귀농
- 생활비 없어 당장 고물 수집부터 시작
- 퇴비회사 영업사원 일하며 연밭 인연

- 땅속 연근 굴삭기로 흙 걷어낸 뒤 수확
- 출하 땐 경매 대신 인터넷 판매 주력
- 친환경 퇴비 사용, 손으로 잡초 제거
- 올해 한살림과 3억 원대 납품계약 결실

경남 진주 시내에서 경남도청 서부청사 방향으로 차를 타고 가다가 금산교 앞에서 좌회전하면 우측에 시설채소 재배지로 백색의 물결을 이루는 대곡면 단목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좌회전해 5분가량 가면 철이 지나 연잎은 말라 떨어지고 앙상한 줄기만 붉게 서 있는 6만6000㎡(2만여 평)의 거대한 연밭이 나온다. 미천면 정오마을 젊은 농부 김성식(48) 이지원(40) 씨 부부의 연근 밭 대금농장이다.

날씬하고 키가 훤칠한 농군이 수확한 연근을 상자에 담다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그의 첫인상은 매출이 말해주듯 자신감과 활기로 넘쳤다.

	경남 진주시 미천면 대금농장 김성식 씨가 수확한 연근을 출하하기 위해 박스에 담고 있다.

■ 무일푼으로 귀촌

진주에서 고교를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 복싱을 했다. 이후 부산으로 가 프로 복싱에 입문해 라이트급 선수로 생활했다. 하지만 4회전짜리 프로 복서의 파이트머니는 50만 원에 불과했다.

1년에 10번 시합에 나간다고 해도 연봉이 500만 원인 셈이다.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김 씨는 마산으로 가 유흥업소에 취직해 10여 년간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 IMF 외환위기는 그에게 유흥업소 생활도 못하게 했다. 경제난으로 손님의 발길이 끊기면서 업소는 문을 닫았고 직장도 잃었다.

	대금농장 김성식 씨가 수확한 뒤 일부 가공해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에 공급하는 연근.

지인의 소개로 종업원 400여 명이 근무하는 서울 유명 헬스클럽 대표의 비서로 취직했다. 대표의 실수로 회사는 부도가 났고 또다시 실직했다. 운동만 했던 터라 서울에서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노모가 있는 고향에 무일푼으로 귀농했다.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박스와 폐비닐을 수거하는 고물수집을 수개월간 계속했다. 그러다 퇴비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3년 동안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고물을 수집하는 고된 삶을 살면서 종잣돈 마련에 나섰다.

김 씨는 이 일을 하면서 농업의 가치를 지키고, 부가가치도 높일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러다 지금은 스승으로 모시는 지수면 공현식(68) 씨가 운영하는 연밭에 퇴비 영업을 하러 간 게 농업에 직접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김 씨는 “연근은 한 번만 종자를 심으면 8, 9월부터 이듬해 4, 5월까지 매년 수확이 가능하고 덤으로 자연산 미꾸라지 농사도 같이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연근을 재배하게 됐다”고 밝혔다.

■ 연밭을 일구다

	대금농장 연밭에서 수확한 연근.

자신이 마련한 종잣돈 1700만 원으로 종자를 사고 1만1550㎡(3500평)의 논을 임대해 연밭을 일구었다. 준비 없이 연근 재배에 나서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다. 김 씨는 “소농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이때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연근을 수확하려면 재배면적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굴착기가 필수다. 땅속 20~30㎝에 묻힌 연근을 수확하려면 1차로 굴착기로 흙을 일정량 걷어낸 뒤 쇠스랑으로 일일이 캐야 하기 때문이다. 재배 면적은 크지 않아 굴착기 비용까지 투자하면 효율이 높지 않았다. 김 씨는 고민 끝에 이듬해 3.3㎡에 2000원인 땅을 빌려 재배면적을 6만6000㎡로 확대했다.

과감한 투자를 했지만, 이번에는 연근을 부러지지 않고 상품성 있게 수확하기 위한 기술이 없어 문제가 됐다. 김 씨는 연근 재배 2년 차까지 밀양에서 연근 채취 기술자를 모셔와 외국인 근로자 2명과 연근 수확에 나섰다.

이렇게 수확하니 연근 한 상자(15㎏)를 채취하는 데 비용이 1만 원이나 들었다. 그러나 그해 연근 경매 가격은 1만4000원에 그쳐 생산비도 건지지 못했다.

김 씨는 지난해부터 연근 채취 기술을 배워 아내와 직접 수확에 나서고 있다. 또 연근 출하도 경매 대신 비싼 값을 받는 인터넷 판매에 주력했다. 그는 지난해 밴드와 카페 40%, 네이버 스토어팜 20%, 직거래 40%로 연근을 판매했다.

■ 더 큰 꿈을 향하여

덕분에 올해부터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과 3억 원대의 연근 납품 계약을 맺었다. 한살림은 까다롭기로 소문났지만, 전국 200여 개 매장을 두고 있어 계약 재배를 하면 판로 걱정을 하지 않고 제값에 연근을 팔 수 있다.

김 씨가 이렇게 높은 매출을 올리는 비결은 유기농 재배 매뉴얼 때문이다. 연근 재배는 잡초 제거가 최대 관건인데, 대부분 농가에서 제초제를 사용한다. 하지만 후발 주자로 연근 재배에 나선 김 씨는 힘들지만 무농약을 고집했다. 직접 잡초를 제거하고 손쉬운 화학비료 대신 친환경 퇴비를 사용한다. 김 씨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올해 2억 원을 들여 연근 분말, 연근차 생산 등 가공공장 건립에 나선다. 또 외지인이 농장에 찾아와 농사일을 체험하고 휴식도 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김인수 기자 is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