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감만 갖고 준비 안 된 귀농

- 서울살이 접고 시댁 근처 창녕으로
- 3년 단감농사·오토캠핑장 실패에
- 한순간 집도 없는 ‘알거지’ 신세 돼
- 달랑 23만 원 들고 오지마을 성지골로

#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인생 2막

- 토종 선인장 천년초 재배기술 습득
- 큰돈 안 들여 뿌리·줄기 채취 기회 와
- 대량생산 위해 주민 설득·조합 설립
- 2만여 평 재배… 마을 수입원 톡톡
- 엑기스·수딩젤 등 백화점서 호응

경남 창녕군 대합면 계동 성지골마을은 창녕군의 북부에 위치한 곳으로 대중교통이 닿지 않아 군내에서 오지로 꼽힌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2㎞나 걸어 나와야 한다. 승용차를 타고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마을 진입도로를 1㎞나 지나서야 비로소 마을 중턱에 자리 잡은 굿데이영농조합을 만날 수 있다.

	경남 창녕군 대합면 성지골마을에 자리잡은 굿데이영농조합 천년초 엑기스 생산공장에서 지정숙(왼쪽 두 번째) 사무국장과 함께 근무하는 노인들이 작업을 하다 사진 촬영 요청에 일손을 잠시 놓았다.

‘굿데이영농조합법인’ 사무국장인 지정숙(여·63)씨는 준비 안 된 귀농으로 35억 원을 날리는 처참한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맨손으로 다시 시작한 그의 귀농인생 제2막은 이제 제법 번듯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 씨는 성지골마을 주민과 똘똘 뭉쳐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고 있다.

■준비 안 된 귀농은 실패

	천년초 열매

서울이 고향인 지 씨는 법무사를 고용해 법무사사무실을 운영했다. 법무사사무실에서 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시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시댁인 대구를 찾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 건강이 크게 악화해 병원에 입원하자 시어머니를 돌보려고 대구에서 가까운 창녕에 자리를 잡으면서 귀농 인생을 시작했다.

지 씨는 상공회의소에 근무하던 남편 김영우(65) 씨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창녕군 이방면으로 귀농했다. 이후 지 씨는 지인의 제안으로 세 사람과 함께 단감농장을 동업하기로 했다. 친정에서 부모님이 배 농사짓는 것을 보며 자란 터라 농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경영학 박사인 남편이 경영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동업은 무산됐지만 지 씨 부부는 50만 ㎡에 달하는 거대한 농장의 주인이 됐다.

지 씨는 농장을 구매하고 직원을 고용하는 등 무려 35억 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첫해 농사부터 수월하지 않았다. 냉해가 겹쳐 단감 수확을 20%밖에 하지 못해 큰 손해를 입었다. 다음 해는 괜찮아지겠지 기대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연이어 3년간 손해가 이어졌다. 농장 일부를 임대하고 또 농장 일부를 오토캠핑장으로 운영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농장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처참한 실패와 마주했다.

■맨손으로 시작한 귀농 2막

	굿데이영농조합 마당에 천년초로 담근 고추장과 간장 등을 품은 장독대와 굿데이영농조합 전경 모습.

지 씨 부부는 단감농장 실패로 알거지가 됐다. 2012년 거주할 집도 없이 교회 목사와 성도들의 배려로 수중에 남은 23만 원을 갖고 성지골로 들어왔다.

지 씨는 교회에서 지내며 교회 주방에서 일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식사도 준비하면서 마을 주민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이들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은 마을 어르신들이 이들에게 집 지을 땅과 집 짓는 공사비까지 선뜻 빌려줬다. 성지골 주민이 된 지 씨 부부는 쉬는 날이면 들로, 산으로 다니며 약용 식물을 찾아 효소와 장아찌 등을 만들고 서울 지인들에게 판매했다.

그러던 중 특용작물인 ‘천년초’를 만나게 됐다. 지 씨는 “수능 공부하듯이 천년초 재배방법을 연구했다. 창녕생태귀농학교를 수료하고 창녕군 농업인대학 농산물 가공반, 약용재배반 등을 통해 천년초 재배기술을 습득했다”고 말했다. 준비된 자에게 마침내 인연이 다가왔다. 전북 익산의 천년초 농장이 산업단지로 수용되면서 그곳에서 직접 뿌리와 줄기를 채취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2013년부터 천년초를 재배하게 된 것이다.

■굿데이영농조합법인 설립

지 씨 부부가 천년초 재배를 시작한 지 3년 뒤부터 수익이 발생했다. 지 씨는 혼자 힘으로는 대량 납품이 불가능하자 기술력이 있는 마을 어르신을 설득해 굿데이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었다. 그는 “처음부터 마을 어르신이 선뜻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년초의 효능과 재배방법 등을 계속 알리며 설득하는 노력에 주민들에게 신뢰를 준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을주민 19명과 함께 만든 ‘굿데이영농조합’은 2016년 마을기업으로 선정됐다. 2017년에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창조적 마을 가꾸기 사업에도 선정돼 정부로부터 4억 원의 보조금도 받았다.

성지골마을의 천년초 재배면적은 2만2000여 평에 이른다. 가구당 연간 수입도 1500만 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생산이사인 김준택(82) 씨는 “논농사, 밭농사만 짓던 동네에서 천년초를 재배하고 있다”며 “늙어서도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져 노인들이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굿데이영농조합에서는 천년초 엑기스, 천년초 수딩젤 등을 부산과 창원, 서울 등지 백화점에 입점 판매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또 ‘천년초를 품은 1분도 누룽지’, ‘천년초를 품은 현미 누룽지 야채죽’을 특허 출원 준비 중이다. 이곳은 체험마을도 운영하고 있는 데, 해마다 전국 30~40곳에서 방문한다. 또 천년초 재배지는 창녕생태귀농학교, 경남생태귀농학교의 현장 견학지로도 활용된다.

지 씨는 “천년초는 토종 선인장으로 식이섬유와 비타민C, 사포닌 등이 다량으로 함유돼 약용가치가 높은 작물”이라며 “혈관에 좋은 양파와 청혈효과가 뛰어난 천년초를 접목해 ‘천년의 향’을 나타낼 수 있도록 건강음료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귀농 이후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잘된다는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성공적인 귀농은 우선 나에게 적합한 작물을 선택하고, 반드시 마을 주민들과 하나가 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종호 기자 jh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