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공간서 아름다운 순간들
- 박정훈 사진가가 앵글에 담아
- 예술창작공간 갤러리서 전시회

“아이고, 과일 집 새댁 아이가. 이렇게 예뻤나.”

부산 금정구 서동 예술창작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 전시회 ‘아름다운 이 순간’ 오픈식에 참석한 김정희(오른쪽) 씨가 자신의 사진 앞에서 가족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금정문화재단 제공

“횟집 사장 보고 장사 그만 접고 빨리 오라 해라. 사진 정말 잘 나왔다.”

지난 20일 오후 7시 부산 금정구 서동예술창작공간 1층 갤러리 전시장. 서동 미로시장 상인 24명이 모델이 된 사진전 ‘아름다운 이 순간’ 오픈식이 열렸다. 전시장 입구부터 레드카펫과 조명이 설치되고 모델들이 한 사람씩 입장하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30대 젊은 부부부터 지나가는 손님과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채소가게 상인, 이곳에서 30년 넘게 가게를 운영했다는 노부부 등 사진가 박정훈이 시장 사람들의 가장 밝고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자신의 사진이 미술관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장사하다 말고 뒤늦게 참석한 아주머니, 가족과 친구들을 데려와서 자랑하는 사람들로 전시장은 밤늦게까지 북적였다.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부산 금정문화재단이 주관한 ‘내가 만드는 미술관-서동 작은 미술관’의 두 번째 전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시행하는 ‘2018년도 작은 미술관 전시활성화지원 사업 2차 공모’에 금정문화재단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선정돼 지역 미술인과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참여형 전시 3개를 선보인다. 내가 만드는 미술관 프로젝트는 전시 총괄기획을 맡은 김미희 독립 큐레이터와 재단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춰 작가와 관람객이 쉽게 접근하고 소통할 방법을 고민해 내놓은 작품이다.

김미희 큐레이터는 “사진에 부여되는 지나친 철학의 과잉을 빼고 수시로 주민들이 와서 보고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다”며 “사진 콘셉트가 치열한 삶의 현장이 아니라 삶의 공간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찍는 것이다 보니 밝은 장면이 많다”고 말했다.

사진 촬영은 지난달 단 이틀 동안 진행됐다. 모델들이 매일 시장에서 생업에 매달리다 보니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박정훈 작가는 “처음에는 ‘허름한 가게에서 뭘 찍냐’며 걱정하고 가게에 들어오는 것도 경계하는 분위기였는데, 촬영이 무르익자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분위기가 좋았다”며 “전시장에서 잘 나온 사진을 보고 자긍심을 느끼는 상인들의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는 24일에는 박 작가가 진행하는 사진 교실 ‘SNS 인생 사진관’도 열린다. 휴대전화를 잘 다루는 고등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참가자들에게 휴대전화로 자신의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는 방법을 교육한다.

시장 안 골목에 자리 잡은 서동예술창작공간은 방치돼 있던 회센터 건물을 개조해 2012년 문을 열었다. 2층짜리 건물은 연극, 공연, 전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주민들은 이곳을 예의 차릴 것 없이 장바구니,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다 편하게 들르는 사랑방으로 이용하고 있다. 주민 김민자(54)씨는 “시장에서 친구들과 만날 장소가 마땅치 않았는데 앞으론 전시장에서 만나 함께 장도 보고 전시도 보면 좋겠다”며 전시장을 둘러 봤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