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대구 주민 요청에 실사 진행

- 적합성 가릴 기준 명확치 않아

- 유족과는 APEC 나루공원 합의

부산 해운대구가 무단 철거 후 고철로 처리해 논란이 됐던 설치미술 거장 데니스 오펜하임의 유작인 ‘꽃의 내부’(사진)를 재설치할 장소로 달맞이길을 검토하고 있다. 오펜하임의 유족과 재설치 장소로 합의한 APEC 나루공원 대신 달맞이길 설치를 검토하면서도 명확한 판단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운대구는 최근 달맞이길에서 ‘꽃의 내부’ 설치 장소를 선정하기 위한 비공식 전문가 실사를 진행했다고 19일 밝혔다. ‘꽃의 내부’는 2011년 해운대구가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에 의뢰해 국제 공모를 거쳐 해운대해수욕장에 설치한 작품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호안 도로 확장공사 때 구 관광시설 사업소가 무단 철거 후 고철로 처분해 미술계와 오펜하임 유족의 반발을 샀다. 이후 구는 오펜하임의 유족에게 사과한 후 APEC 나루공원에 ‘꽃의 내부’를 재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달맞이길 주변 상인과 주민이 이 작품을 달맞이길에 재설치해달라고 요청하면서 구는 재설치 장소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관련 공청회가 열렸고, 주민들은 조만간 오펜하임의 유족에게 꽃의 내부를 달맞이길에 설치하는 데 동의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낼 예정이다.

그러나 어느 장소가 꽃의 내부 설치에 더 적합한지 가릴 기준을 제대로 정하지도 않고 구가 실사를 진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구 관계자도 “명확한 기준은 없다”면서 “실사단이 10㎡ 정도의 공간이 있고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 지, 방문객 수가 충분한지와 인근에 유사 설치물 유무를 살폈다”고 말했다. 구는 오펜하임의 유족에게 두 장소의 지적도와 위치정보 등을 보내 의견을 물을 계획이지만, 설치 적합성을 따지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정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문화계 관계자는 “주변 조형물과 상생 가능성, 주민의 열망, 관람 수요 예측성 등을 측정할 기준을 마련하고 공식적인 전문가 위원회를 발족해야 한다”며 “‘주민 의견’을 내세우는 것은 향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