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가 중국 여행길에 오른 것은 2011년 6월이었다. 중국에 사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서다. 평양 사람인 김 씨로서는 첫 외국 여행이었다. 여행 예정 기간은 2개월. 그런데 중국에 입국하자마자 단박에 김 씨를 알아보고 접근한 건 언니가 아닌 브로커 A 씨였다. 중국어를 못 하는 김 씨에게 브로커는 행선지를 물어 열차표를 끊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연락처도 교환했다. 언니 집에 도착해서도 간혹 연락을 주고받았다.

김 씨는 “심한 간경화를 앓았다. 여행하던 중 중국 의료 기술이 북한보다 뛰어나단 걸 알게 됐고 치료를 받아 돌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북한과 달리 중국의 의료는 공짜가 아니었다. 고민하던 김 씨의 머릿속에 떠오른 브로커 A 씨에게 연락하자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화폐 가치가 높은 남한에 가서 두 달만 일하다 오면 가능하다고 했다. 남한엘 갔다가 어떻게 돌아오느냐는 질문에는 밀항편을 수배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김 씨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국정원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김 씨를 평양에서 도망쳐 나온 ‘탈북자’로 대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김 씨는 2011년 9월 16일 인천 공항을 통해 남한에 왔다. 국정원과 하나원을 거쳐 6개월이 지나자 정착 지원금 600만 원이 지급됐다. 김 씨는 “국정원 직원이 이 돈 중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A 씨에게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제야 왜 A 씨가 중국에서 내게 접근했던 것인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절망하던 김 씨는 두 차례 목숨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수면제 수십 알을 집어삼키고, 스스로 손목을 긋고도 살아남았다. 이후 김 씨는 국내외 언론과 접촉하고 강연 활동도 시작했다. CNN 등 외신 기자들이 북의 가족들을 만나 소식을 전해주는데, 지난해 말 김 씨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70)가 실명한 사실도 알게 됐다. 평양에는 김 씨 아버지와 남편, 딸이 여전히 김 씨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8월 김 씨에게 갑자기 여권이 발급됐다. 김 씨는 “그간 아무리 신청해도 여권을 주지 않았다. 주자마자 평양으로 돌아갈 거라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주일 뒤 검찰로부터 출국금지를 통보받았다. 강연 중 “다시 태어나도 북한에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것이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에 해당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김 씨는 “북한에 태어나고 싶다는 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말한 거였다. 조사에서 오해를 풀고 고향에 돌아가기 위한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