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맨션에서 반나절에 걸쳐 일가족 4명을 차례로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치정살인으로 추정된다. 용의자는 일가족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새 옷으로 갈아입는 엽기적 행각까지 보였다.

	CCTV에 찍힌 용의자 모습.

부산 사하경찰서는 지난 25일 밤 10시30분께 사하구 장림동 한 맨션에서 조모(여·33) 씨와 할머니 박모(84) 씨, 아버지 조모(65) 씨, 어머니 박모(57) 씨 등 일가족 4명이 둔기 등에 의해 숨졌다고 26일 밝혔다. 용의자 신모(32) 씨도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신 씨는 둔기와 흉기로 일가족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신고자는 할머니의 사위다. 처가 식구와 함께 불꽃축제에 가려고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알렸다. 경찰은 이날 밤 9시37분에 위치추적으로 일가족이 주거지 부근에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열쇠공을 불러 출입문을 열었다.

숨진 일가족은 모두 머리에서 둔기에 맞은 흔적이 발견됐다. 몸에는 흉기에 찔린 흔적도 나왔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시신은 비닐에 씌워진 채 화장실에 포개져 있었다. 조 씨는 목이 조여진 상태로 거실에 엎드려 있었다. 용의자 신 씨는 작은방에서 머리에 비닐봉지를 쓴 후 호스로 질소를 주입해 숨졌다.

경찰은 CCTV로 지난 24일 이후 이들이 맨션을 드나든 시각을 확인했다. 먼저 지난 24일 오후 3시41분 아버지 조모(65) 씨가 들어왔다. 용의자 신 씨는 같은 날 오후 4시12분 선글라스와 등산모를 쓰고 가방을 든 채 출입했다. 가방에는 범행에 쓰인 도구와 혈흔이 검출된 전기충격기 등 약 50점의 물건이 든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날 오후 5시52분 할머니 박 씨가, 이어 오후 6시43분 어머니 박모(57) 씨가 귀가 했다. 끝으로 지난 25일 0시7분에 조 씨가 현관문을 출입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신 씨가 집 안에서 대기하며 차례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봤다. 신 씨는 조 씨와 연인 관계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 씨 유족은 두 사람이 연인 사이로 지난해까지 신 씨 어머니 집에서 함께 살았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8월까지 경남 양산에서 함께 살았다. 신 씨의 유족은 모종의 이유로 두 사람이 헤어진 뒤 신 씨가 힘들어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신 씨가 범행 준비에 상당 시간을 쓴 것으로 봤다. 신 씨는 약 한 달 전 전기충격기 구매를 위해 경찰에 허가를 신청했다. 또 범행 이후인 지난 25일 오전 9시50분께 자신의 차량으로 내려가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 사용한 질소가스통과 또 다른 가방을 등에 메고 다시 범행지로 향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였다. 이외에도 경찰은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흉기가 집이 아닌 차량에서 발견된 점, 옷을 갈아입은 뒤 메고 간 가방 또한 차량에서 발견된 점 등 정황이 뚜렷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신심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