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진 곳에 위령비 세운뒤 방치

- 기장군·경찰, 추모공원 추진

- 국가지정 현충시설 등록 계획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지역 치안을 지키다 전사한 경찰의 넋을 기리는 토대가 마련된다. 부산 기장경찰서와 기장군은 총 9700만 원을 투입해 ‘1952년 철마면 공비 출현 사건’으로 숨진 7명을 기리는 추모공원의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1952년 기장군 철마면 공비 출현 사건은 그해 9월 2일 오후 8시께 철마면 이곡리에 무장공비가 출현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의용경찰이 매복한 공비의 공격을 받고 숨진 일을 말한다. 당시 동래경찰서 철마지서 이경섭 순경은 의용경찰 1개 분대(8명)를 이끌고 출동했지만, 출동 도중 습격을 받아 이 순경과 의용경찰 6명 등 7명이 모두 숨졌다.

경찰과 철마면 주민 등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전쟁 당시 부산 시내에는 무장공비가 없었지만, 외곽 지역인 기장에는 공비가 많았다. 이들은 낮에는 산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음식 등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왔는데, 당시 경찰은 이들과 대치하며 치안에 힘썼다. 그러다 그해 철마면 공비 사건이 터지면서 군과 경찰이 대대적으로 공비 소탕 작전에 나서 3명을 사살하고, 10여 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남은 공비도 흩어져 결국 이 순경과 마을 청년이었던 의용경찰의 희생으로 마을은 평화를 되찾은 셈이 됐다.

1984년 생존자의 건의로 이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75×55㎝)가 제작됐으나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해 20년 이상 창고에서 보관되다 2005년 12월 철마면사무소 화단 외진 곳에서 제막됐다. 매년 현충일 경찰 간부 몇 명만 다녀갈 뿐 주민 대다수는 위령비가 있는 사실조차 몰랐다.

민족 상잔 속 숨진 이를 전혀 기억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기장서는 올해 추모공원 건립을 검토했다. 처음에 기장군은 ‘경찰의 일’이라며 협조하지 않았고 주민 일부는 혐오시설이라며 반대했지만, 경찰이 ‘숨진 의용경찰은 기장 주민을 위해 희생된 기장 사람’이라고 설득해 승낙을 받았다.

군과 군의회도 힘을 보탰다. 군과 군의회는 철마체육공원 땅 200㎡가량을 무상으로 내놨고, 군비 9700만 원도 확보했다. 새 부지는 평소 운동하는 주민과 어린이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기장서는 위령비 외에도 추모공원 형태로 가꿔 이 순경과 6명 의용경찰의 넋을 기릴 예정이다. 추모공원의 핵심인 위령비는 현재 폭 1.8ｍ, 높이 3.3ｍ 크기의 화강암으로 마련됐으며, 비문은 기장문화원 황구 박사 등 지역 원로가 논의하고 있다.

실무를 주도한 기장서 박도언 경위는 “그간 매년 현충일마다 초라한 위령비를 보며 안타까웠는데, 많은 분이 도와줘 추모공원을 열게 됐다. 다음 달 초 유족과 지역 인사를 초청해 제막식을 개최하고, 지속적인 보수·관리를 위해 보훈청에 국가지정 현충 시설 등록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호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