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이플라워로 소품 등 제작
- 해운대 ‘수화공방’서 구슬땀
- “1년 뒤엔 꼭 홀로 설 거예요”

“제 전공을 살려서 꽃 디자인을 활용한 스마트폰 케이스를 만들고 싶어요.”

	16일 부산 해운대구 청각장애인 공동작업장 ‘수화공방’에서 직원들이 드라이플라워를 이용해 플라워카드를 만들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민 작업반장, 백선홍 씨, 이가현 씨.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16일 부산 해운대구 좌동 ‘수화공방’은 마른 꽃향기가 가득했다. 이곳은 백선홍(28·청각장애 4급) 씨와 이가현(여·26·청각장애 2급) 씨의 소중한 직장이다. 백 씨와 이 씨는 드라이플라워를 활용해 플라워카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연필로 카드에 밑그림을 그린 후 붓으로 글귀를 입혀 쓰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손가락 두 개 크기의 마른 꽃을 묶은 후 본드로 카드 위에 붙이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됐다. 이들의 작업을 돕는 작업반장 김영민(37) 씨는 “장애인도 재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이들 재능을 키워주지 않고 단순 업무만 시키고 있다”며 “기술 습득은 조금 느리지만, 한 번 습득하고 나면 일반인보다 감각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해운대구가 지역 공동체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취약 계층의 자립기반 마련을 위해 시작했다. 1년간 1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임대료 인건비 재료비 일체를 부담하고, 백 씨와 이 씨가 1년 후에는 자립하게 하는 게 목적이다. 드라이플라워를 활용해 꽃다발, 화병, 각종 소품 등을 만들어 팔고 배달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현재 상품화가 거의 마무리돼 다음 달께 판매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동서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백 씨는 수년간 일반 회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보청기를 꽂아야만 대화할 수 있는 청각장애를 가진 탓이다. 백 씨는 결국 집에서 이미지 편집, 일러스트 등 디자인 작업 아르바이트를 하며 20대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나 수화공방에 취업한 후에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백 씨는 “이제 우리가 만든 상품을 판매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드라이플라워 판매처와 납품을 상의하고 있는데 잘될 것 같다”며 “장기적으로는 꽃말이나 꽃을 그려 넣은 스마트폰 케이스를 만드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는 수화공방에 들어오기 위해 최근까지 다니던 은행을 그만뒀다. 이 씨는 2016년 동아대 섬유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A은행 사무보조원으로 채용됐지만 회사에서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1년6개월간 일했지만 직장에서 단 한 번도 동료와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이 씨는 “복사 등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데다 일이 있으면 메신저로 대화하고 수화가 아니면 대화가 어려워 동료와 어울리지 못했다”며 “은행 일을 그만두고 이곳에 오니 동료와 작업에 대해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작업반장 김 씨는 “이들은 형식적인 장애인 고용에 상처를 받아왔다. 기업에서 각종 혜택을 받으려고 장애인을 고용하기도 하지만 단순 작업만 맡기거나 반드시 고용 기간이 끝나면 잘라버린다”며 “꿈과 재능을 키워 장애인이 일반인을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