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81> 아도니스와 나르시스 : 허무한 인생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0-11 19:07:13
  •  |  본지 26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그리스신화는 신(神)들의 이야기(話)다. 하지만 신과 관련된 인간들 이야기도 많다. 그 중에서 두 절대 미남에 관한 이야기가 슬프다. 첫째, 아도니스. 그는 아프로디테의 저주로 나무가 된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아프로디테가 길렀다. 초절정 미남으로 자라자 반하며 탐냈다. 아레스와 밀회를 즐기는 중에 지상으로 내려와 아도니스와 사랑을 즐겼다. 아도니스는 지하세계 페르세포네와 삼각관계였지만 연상의 아프로디테를 더 좋아했다. 하지만 멧돼지에게 물려 죽었다. 아프로디테는 통곡하며 아도니스가 흘린 피에 신주(神酒)인 넥타르를 뿌렸다. 여기서 바람꽃(Anemone)이 피어났다. 둘째, 나르시스. 이 초절정 미남을 요정들도 좋아했다. 콧대 높은 아도니스가 꿈쩍도 않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저주를 부탁했다. 그럼에도 에코(Echo) 요정은 끈질겼다. 하나 구애에 실패했다. 말라 죽으며 메아리로 남았다. 저주에 걸린 아도니스는 샘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자기를 죽도록 사랑하게 된다. 결국 죽었다. 죽은 자리에 수선화(Narcissus)가 피어났다.

   
아도니스와 나르시스의 허망한 환생.
두 미남 이야기는 무슨 의미일까? 아도니스는 바람처럼 왔다가는 사랑의 허망함이 아닐까? 나르시스는 자아 도취(Narcissism)의 허망함이 아닐까? 허무한 인생! 그럴수록 내일의 황금보다 오늘의 지금을 잡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아도니스의 요절은 비극이지만 나르시스의 요절은 비극보다 슬픈 희비극이다. 아도니스도 살던 바람같은 인생살이에서 나르시스처럼 자아도취적 자기감상에 빠지지 말며 살자. Let’s live for today ≒ Carpe Diem.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 기사주소복사
  • 스크랩
  • 인쇄

건강한 부산을 위한 시민행동 프로젝트
많이 본 뉴스 RSS
  •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스포츠

난치병 환우에 새 생명을
신장암 김영진 씨
걷고 싶은 길
사천 은사 선비길
부강한 진주 행복한 시민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