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부산 16개 구·군 대부분 인수위원회가 구성됐다. 지역별로 4만~40만 명에 달하는 도시의 각종 현안을 인수인계하느라 당선인 측과 구청 직원이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 3선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달부터는 짐을 내려놓게 될 부산 7개 지역의 구청장이다.

이달 말 퇴임하는 부산지역 7개 구청장이 22일 국제신문에 소회를 밝혔다. 왼쪽부터 이위준(연제구) 이종철(남구) 어윤태(영도구) 김은숙(중구) 하계열(부산진구) 박극제(서구) 박현욱(수영구) 구청장.

10년 넘게 단체장을 하며 해당 지역의 인맥과 정보를 쌓은 그들은 퇴임 후 어떤 삶을 계획하고 있을까.

“지역 발전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12년을 비워둔 서울 집엔 조금 더 있다가 돌아갈까 합니다.” 영도구 어윤태(72) 구청장의 말이다. 그는 “12년을 맡아온 직이 끝난다. 지금으로서는 아쉽기보다는 홀가분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어 구청장은 6개월 전 영도구 동삼동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얻어 구청장실에 있던 물품을 옮겼다. 가칭 ‘영도 발전 연구소’가 될 이곳은 3선 구청장을 지낸 그에게 찾아올 민원인을 맞기 위한 공간이다. 이미 활동 계획도 일부 서 있다. 어 구청장은 “본래 내 전공은 교육과 후학 양성”이라며 “2019 국제당뇨병연맹(IDF) 총회 자문위원에 위촉됐고 지역 대학 2곳에서 겸임 교수 요청이 들어왔다. 인생 후반을 교육과 봉사에 집중하되 정치와는 담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중구 김은숙(여·73) 구청장과 연제구 이위준(75) 구청장 또한 정치와는 거리를 두되 봉사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김 구청장은 “구청장이 되기 이전에는 부산시 여성단체협의회, 여약사회 등에서 활동했지만 3선을 수행하는 동안 아무래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은 퇴임 이후 이들 단체 관계자를 만나 지역 보건·여성과 관련한 현안을 파악해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 구청장은 3선 구청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평생교육 분야에 관심을 뒀다. 그는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다”면서도 “잠시 휴식기를 거친 뒤 독서 관련 후원, 책 기부 등 봉사활동을 벌일 생각이다. 정치 쪽으로는 전혀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당장은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정치활동에 마음을 두는 이도 있다. 수영구 박현욱(63) 구청장은 시의원을 거쳐 3선 구청장직을 수행하며 오랜 세월 지역 정치에 매진해왔다. 그는 “수영구와 주민의 발전을 위해 내가 할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도움을 청하는 곳이 있다면 힘껏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구 박극제(67) 구청장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다소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쉬어야 하겠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하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반면 부산진구 하계열(72) 구청장과 남구 이종철(74) 구청장은 임기가 끝나면 가족과 자기 계발에 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계 은퇴는 물론 사회적 역할도 완전히 놓고 싶다는 것이다.

하 구청장은 “내가 다른 선출직에 나서겠다는 건 노욕이다. 임기를 마치면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게 가족과의 약속이고, 이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랜 공직 세월을 정리하며 최근 사비를 들여 ‘수변정담’(비매품)이라는 책을 내 주변인에게 보내는 것으로 인사를 건네고 있다. 하 구청장은 새 임기를 시작할 지역 단체장에게 “우리가 부산의 기반을 쌓았다면, 후임 단체장은 금칠을 해 부산 발전을 이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구청장 또한 “시의원 8년, 구청장 12년 세월 동안 지역 발전에 애썼다. 그간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봉사활동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정치에 뜻을 두지 않은 채 가족과 건강 관리에 열중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