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조인과 기표소 함께 들어서자
- 선거법 모른 직원 당황하며 제지
- 도장찍는 공간도 좁아 불편 호소

- 부산 907곳 중 13%가 2층 위치
- “장애 유형별 맞춤서비스 필요”

13일 오후 4시께 부산 부산진구 한 투표소에서 작은 소란이 생겼다. 뇌병변 장애 2급인 고숙희(26) 씨가 활동보조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려고 하자 선관위 직원이 막아섰다. 기표소에 장애인 유권자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씨가 “선거법상 활동 보조인과 단둘이서 투표할 수 있다”고 항의하자 투표사무원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고 씨의 고행은 기표소 안에서 한 번 더 일어났다. 고 씨는 일반 기표소보다 2배가량 넓은 장애인용 기표소를 이용했지만 활동 보조인의 보조 공간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보조인이 장애인을 돕기가 힘들었다.

	13일 부산진구에 마련된 전포1동 제 3투표소를 찾은 지체장애인 고숙희 씨가 활동 보조원의 도움을 받아 투표하고 있다. 박수현 기자

고 씨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투표를 거부했다. 2층에 위치한 투표소 때문이다. 심지어 승강기마저 설치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1층 임시 기표소에서 발생했다. 선관위는 2층까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1층에 임시 기표소를 마련했지만 투표함은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선관위는 고 씨의 투표용지를 2층의 투표함에 대신 넣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고 씨는 “내 한 표가 투표함에 들어갔는지 어떻게 아느냐”며 투표소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현재 고 씨는 장애인 투표권 보장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투표소의 문턱은 여전히 장애인이 넘기엔 높다. 부산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역 내 투표소는 총 907곳으로 그중 1층이 아닌 지하 1층, 지상 2층에 있는 기표소가 위치한 투표소가 123곳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승강기마저 설치되지 않은 곳은 30여 곳이다.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이 드나들기에 버거운 셈이다. 이에 선관위는 투표소 1층에 임시 기표소를 세워 장애인의 투표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정작 1층에 투표함이 없는 경우가 많다. 부산 장애인총연합회 안성태 부장은 “상황에 따라 투표사무원이 장애인을 업어서 이동을 돕는다고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거의 없다. 낯선 누군가의 등에 업힐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반문했다.

투표소에 장애인 전문 안내원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투표소마다 12~16명 정도 유권자의 투표를 돕는 데, 1명의 투표사무관은 공무원이며 나머지는 일반인 등으로 구성된 투표사무원이다. 장애인 전문 안내원이 없다 보니 고 씨의 사례처럼 장애인 유권자가 투표소에 들어서면 투표소는 순간 혼란에 휩싸인다. 한 투표사무관은 “이 투표소를 방문한 장애인 유권자는 한 명밖에 없었다. 첫 장애인 유권자라 투표사무원들이 순간 당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장애 유형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서대 김종건(사회복지) 교수는 “장애 유형별로 장애인들이 투표소에서 겪는 어려움을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해정 기자 ca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