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2시 부산 부산진구 어린이대공원 수변공원. 일제 강점기 부산경찰서(남포동)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 서장을 폭사시킨 뒤 1921년 5월 옥중에서 숨진 박재혁 의사를 기리는 추모 기념식장의 분위기는 스산했다. 비 가림막을 쳤지만 추적추적 내린 비로 참석자들이 입은 흰색 두루마기와 손에 들린 태극기는 젖어갔다. “매년 200명 넘는 사람이 모였는데 올해는 100명 남짓이네요. 그나마 선거철인데 기관장이나 정치인도 오지 않습니다.” 박 의사 여동생의 손녀인 김경은(54) 씨가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어린이대공원 내 수변공원에 위치한 박재혁 의사 동상 앞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개성중학교 학생들이 헌화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지난해 광복절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저평가된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고 그 후손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박 의사 순국 97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식 현장의 분위기는 이처럼 단출했다.

㈔3월동지회는 1998년 박 의사의 동상이 세워진 이래 매년 이곳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동지회 서봉수 회장은 “행사 비용 1000만 원 중 부산시가 지난해까지 180만 원을 지원하다 올해 200만 원으로 늘렸지만 그보다 시장 등의 인사가 관심을 갖고 방문했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인 김경은 씨도 “유족 지원을 바라는 것은 없다. 다만 당장 국가 차원의 행사는 아니더라도 시장 등 책임 있는 이들이 함께 20대 젊은 시절 박 의사의 의거와 고뇌를 추모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이날 추모봉행위원회 고문인 서병수 부산시장, 김석준 교육감은 물론 6·13지방선거 주요 후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관장 중에는 박 의사 생가가 자리한 동구의 박삼석 청장만 잠깐 얼굴을 비쳤다. 그는 “박 의사 생가 복원 등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예산 등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안타깝다. 박 의사의 업적은 더 많은 시민이 알 수 있도록 기려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공립상업학교(지금의 개성중·고)를 졸업한 박 의사의 후배로 추모식장을 찾은 개성중 조정욱(3학년) 군은 “다른 학교 친구들은 박 의사를 잘 모른다. 적어도 부산의 초중고교에서는 역사 시간에 박 의사의 의거에 대해 자세히 다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박 의사는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과도 견줄 만한 인물”이라며 “하지만 중앙정부가 모든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일일이 파악할 수 없다. 이를 밝히고 알려 재평가받게 하는 것이 시의 책무”라고 말했다. 3월동지회 윤광운 사무총장은 “기존 순국과 의거를 기념해 벌인 행사 외에도 박 의사 탄생(5월 17일)과 관련해 범일동 생가 일대에서 행사를 추가로 마련하고 연간 3회에 걸쳐 박 의사를 시민에게 알리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