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가 재판 과정에서 공개한 몸캠피싱 협박범의 PC 해킹 영상.

‘몸캠 피싱’ 구제를 빙자해 사기를 친 혐의로 구속된 20대 남성이 수년에 걸친 재판 끝에 ‘화이트 해커’로 판명 나 누명을 벗었다. 재판 과정에서 몸캠 피싱 구제 가능 여부를 가리는 기술 논쟁이 벌어져 법정에서 이례적으로 해킹 기술 시연이 이뤄지기도 했다.

부산지방법원 형사8단독 송중호 부장판사는 지난 6일 사기와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23)씨의 선고공판에서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해커 출신인 김 씨는 2014년 10월부터 2016년 4월까지 CISA라는 보안회사를 설립해 몸캠 구제 블로그를 운영했다.

몸캠이란 스마트폰 화상 채팅을 하면서 음란행위를 하는 영상을 말한다. 일부 남성이 채팅 상대로부터 녹화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몸캠 피싱)을 당했다.

피해 남성 3200여 명이 피싱당한 자신의 동영상을 삭제해 달라며 블로그에 구제 의뢰를 했다. 이에 김 씨는 몸캠 피싱 피해자 746명으로부터 “동영상 유포를 막아주겠다”며 4억142만8662원을 받았다.

하지만 일부 의뢰자 사이에서 피해 구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제기됐고, 김 씨와 온라인 일간베스트 사이트에서 구제 가능성을 두고 기술 논쟁을 벌인 해커가 경찰에 해당 내용을 제보하면서 관련 수사가 시작됐다.

이후 부산경찰청 사이버테러 수사팀은 공범 2명의 제보를 토대로 김 씨가 몸캠 피싱을 당한 사람들에게 유출 영상의 유포를 차단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이를 명목으로 4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사기)와 2014년 10월부터 몸캠 협박범의 계정을 해킹해 접근 권한 없이 타인의 정보통신망을 침해한 혐의(정보통신망법 위반)로 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은 2016년 10월 일부 언론에 대서특필돼 김 씨는 몸캠 피싱을 악용한 변종 사기범으로 전락했다. 당시 경찰은 “해킹 피의자의 인터넷 네트워크가 켜져 있다면 연락처 파일 등 일부는 삭제할 수 있지만, 현재는 동영상 파일을 삭제할 수 있는 기술력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3년에 걸친 재판 과정에서 김 씨는 피싱 동영상을 삭제하는 해킹 녹화 장면을 시연하는 등의 노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또 10여 명의 증인이 법정에 출석해 심문을 받았다. 그 결과 재판부는 제보 내용과 공범의 자백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김 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구제 의뢰를 받을 당시 피싱 동영상, 유출된 연락처 등 의뢰인에 관한 정보를 삭제해 유포를 막을 의사 및 능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넘어서는 확신을 주기에 부족하고, 그 밖에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해킹 능력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사이버 수사관의 증언이 있는데, 이들의 증언은 모두 다른 사람의 말을 전해 들은 것이거나 부정적 추정에 불과하고, 오히려 따로 피고인을 수사했던 전남지방경찰청은 피고인이 한 해킹 시연을 통해 유출 정보를 삭제해준 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서 무혐의로 봤다. 심지어 부산지검의 다른 검사조차 피고인에게 무혐의 처분을 한 점을 보더라도 사기로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재판에서 검찰은 김 씨가 의뢰인과 상담 과정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미국 보안회사를 언급한 것을 사기의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김 씨는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려는 의뢰인들을 피하려 한 것이지 사기를 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재판부는 “일부 피해자는 직접 자신의 정보가 삭제된 것을 확인했다”며 “피고인이 2014년 무렵 블로그에 ‘일정한 경우에는 삭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글을 올린 것을 보면 공소사실의 기본 전제조차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의자가 해킹한 사실은 인정된다”며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김 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선고와 보호관찰 명령을 했다.

김 씨의 변호를 맡은 손조흔(법무법인 하늘) 변호사는 “김 씨는 아는 동생의 피해 회복을 돕다가 몸캠 피싱 구제업에 뛰어든 전형적인 화이트 해커”라며 “이번 재판 결과를 토대로 온라인 범죄 피해 구제에 취약한 공적 인프라의 사각지대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문제가 계속되면 사적 구제 과정에서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빈번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