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고문치사 축소·은폐 사과
- 허리 굽혀 “고생시켜 드려 송구
- 제대로 된 나라 만들도록 노력해
- 과거의 잘못 되풀이하지 않겠다”
- 박 옹 “어차피 벌어진 일 괜찮아”

문무일 검찰총장이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90) 옹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 과거 박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 은폐에 관여한 검찰의 잘못을 사과했다.

문 총장은 20일 오후 부산 수영구 남천사랑의요양병원을 방문해 박 옹을 만났다. 검찰에서는 박정식 부산고검장과 김기동 사법연수원 부원장, 주영환 대검찰청 대변인이 동행했다. 박 열사의 형인 종부(59) 씨와 누나인 은숙(55) 씨,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김세균 회장과 변종준·이강원 이사 등도 참석했다.

병실에서 문 총장은 허리를 굽혀 병상에 누운 박 옹과 눈을 맞추며 “너무 늦게 뵙고 사과 말씀드리게 돼 죄송하고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박 옹이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까(괜찮다)”고 말하자 문 총장은 “긴 세월 너무 고생 많으셨고, 못 돌봐드려 죄송하다. 후배들이 잘 가꾸어 제대로 된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문 총장의 방문은 지난달 초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번에는 외부에 알리지 않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조용히 방문했다. 박 옹은 당시 “먼길 와줘서 고맙다. 오늘보다 어제가 더 좋았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박 열사의 가족이 전했다.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뜻이라는 게 가족의 설명이다.

박 옹은 지난해 2월 척추 골절상으로 수술을 받고 요양 차 입원했다. 3주 머물 계획이었지만 1년 가까이 퇴원하지 못했다. 이날 문 총장과 박 옹의 대화는 20여 분간 이어졌다.

문 총장은 병문안 뒤에 병원 1층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저희는 1987년의 시대정신을 잘 기억하고 있다. 당시는 민주주의냐 독재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대학생들의 결집된 힘이 사회의 에너지가 됐고 그 시발점이자 한가운데 박 열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1987년 독재를 무너트리고 이룩한 민주주의를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하고 후대에 물려줄지가 우리의 과제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의 사명을 다하겠다. 박 열사 부친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빈다”고 말했다.

문 총장의 방문은 영화 1987 개봉 이후 보도된 종부 씨의 인터뷰에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을 언급한 게 계기가 됐다. 위원회는 2009년 보고서에서 검찰도 박 열사의 고문치사 축소 은폐 조작을 방조했다고 밝혔고, 검찰은 유족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이 인터뷰를 본 문 총장은 보고서를 읽어본 뒤 “보고서에 검찰이 해야 할 조치가 다 언급돼 있지만 미흡했다”는 생각에 박 열사의 혜광고 동기인 김 부원장을 통해 박 열사 가족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은숙 씨는 “이번 문 총장의 방문으로 검찰이 진실화해위원회의 사과 권고를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민주국가가 수립된 마당에 당연히 사과해야 마땅하지만 선뜻 나서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문 총장이 사과해서 아버지도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정철욱 기자 jc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