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문화 전반 남녀 공존 새바람
- ‘악수도 꺼려져’ 역효과 우려엔
- “불편하단 이유로 여성배제 안돼”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열풍에 굳게 닫혔던 사회가 응답하고 있다. 점심 시간을 활용한 회식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고, 고위 간부의 밀폐된 사무실에서 진행됐던 결재도 공개된 사무실에서 진행되는 등 사회 전반에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전문가는 일부 역효과도 있지만, 남녀가 공존하는 사회로 가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직장인은 18일 미투 여파의 가장 큰 변화로 회식 문화을 꼽았다. 근무 후 술자리가 회식의 대명사였던 과거와 달리 점심을 활용하는 회식이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진양 팀장은 “회식하면 저녁에 하는 게 당연했다. 최근 미투 바람과 근무시간 감소로 점심 회식이 정착되고 있다. 팀원 모두가 참여해 맛집을 찾거나 식사 후 티 타임으로 회식을 대체한다. 점심 회식은 성추행이나 성희롱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크게 줄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퇴근 후 회식을 하더라도 노래방 등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있을 만한 장소는 고려 대상에서 빠졌다. BNK금융지주 정우열 차장은 “미투가 이슈화하기 전부터 공식적인 회식 자리는 1차에서 끝났다. 아직 아쉬운 사람 삼삼오오 모여 2차를 가기도 한다. 하지만 가볍게 생맥주 한 잔 정도 더하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정 차장은 “과거 ‘2차는 무조건 노래방’이라는 공식이 있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혹시라도 상사가 노래방 가자고 하면 직원이 앞장서 말리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한 공공기관에 다니는 직장인 최모(여·35) 씨는 “회사에 여성이 많아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식사 후 단체로 영화를 보거나 볼링을 치러 갈 때가 많다”고 말했다.

결재와 회의 문화도 변하고 있다. 부산에 있는 정부 출연 연구원 고위 간부 B 씨는 그간 자신의 사무실에서 진행하던 결재를 최근 사무실 밖 공통 업무 공간에서 하도록 바꿨다. 보고 받거나 회의할 때도 공개된 공간을 활용한다. 앞으로 정말 필요한 때를 제외하면 회의도 여러 명이 참석한 상태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B 씨는 “미투의 본질은 남녀의 대결이 아닌 남성 위주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한 것도 있지만, 권위적인 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전에는 직원이 내 편의를 위해 밀폐된 사무실로 들어왔지만, 이제 이런 사소한 것부터 바꿔야 한다. 보고자가 남자든 여자든 유선전화로 결재나 보고 사항이 있다고 하면 내가 나가서 결재한다”고 말했다.

미투의 거대한 흐름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지만, 동시에 ‘펜스 룰’ 등 역효과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펜스 룰은 2002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아내 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발언에서 유래된 용어다. 직장인 C(51) 씨는 “미투 운동이 확산하면서 사실 남자 입장에서 심적으로 불편한 것이 많다. 얼마 전에는 업무차 만난 여성이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순간적으로 ‘악수해도 될까’하고 생각하며 잠시 쭈뼛거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도 남녀가 공존하는 사회로 가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부산대 김영(사회학과) 교수는 “그간 한국 여성은 공적 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하려는 권력 구조로부터 ‘성적 공격’이라는 수단을 통해 고통받았다. 남성이 권력을 갖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공존 요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중요 결정에 여성을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서지현 검사 등도 제도 안에서 싸웠지만 누구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진실은 권력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래서 방송에 나와 얼굴과 이름을 밝히며 여론에 호소하지 않았나.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받아서는 안 되겠지만, 미투의 거대한 흐름을 통해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