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년간 이용 없어 ‘유명무실’
- 노조 게시판 오히려 적극 이용
- 익명성 보장할 전문가 위촉해야

부산지역 16개 구·군에 설치된 ‘성희롱 고충 상담창구’에 수년간 상담 사건이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담창구가 개설된 지 19년이 지났지만 상담 실적은 한 건도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부산 16개 구·군은 성희롱 고충 상담창구를 설립한 후 현재까지 해당 창구로 신고된 사건은 0건이라고 12일 밝혔다. 성희롱 고충 상담창구는 1999년 시행된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초자치단체에 설치됐다. 이 때 상담창구를 개설한 남·수영구가 부산지역에서 가장 오래됐다. 창구가 개설된 지 19년 동안 단 한 명의 내부고발자가 없었다. 심지어 지난해 성희롱 사건이 벌어진 영도·해운대구에서도 피해자는 공식 창구를 이용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상담창구를 꺼리는 것은 신분이 노출될 위험이 큰 탓으로 분석된다. 피해자가 성희롱 사건을 신고할 때 해당 부서에 전화 혹은 방문한다. 공무원 전용 메신저로도 신고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실명인 탓에 이용하기를 꺼린다. 익명을 요구한 A 공무원은 “성희롱 사건을 접수하러 해당 부서에 방문하는 순간 내 신분이 노출되는데 누가 신고하겠느냐”며 토로했다.

오히려 노동조합 온라인 게시판이 상담창구의 기능을 대신하는 형편이다. 지난해 10월 영도구에서 불거진 성희롱 사건(국제신문 지난해 10월 23일 자 보도)은 노조 게시판을 통해 공론화됐다. 지난해 3월 해운대구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도 노조 게시판으로 알려졌다. 노조 게시판은 익명으로 운영돼 피해자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전문 창구가 아니어서 내부 폭로가 쉽지 않다. 영도구 성희롱 사건도 피해 당사자가 아닌 주변 목격자가 폭로했다.

전문가들은 상담창구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창구에 외부 전문가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상담창구 업무는 같은 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이 맡는다. 짧게는 6개월에서 2년이면 바뀌어 피해자의 신분이 드러나기 쉽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서지율 사무국장은 “광주시처럼 공무원이 담당하던 성희롱 고충 상담 업무를 외부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해정 기자 ca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