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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39> 하동 회남재

남명 선생도 청학동 찾아 발길 돌린… 지리산 자락 선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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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용 기자
  •  |  입력 : 2017-12-31 20:01:01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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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촌~묵계마을 연결 숲길
- 곳곳에 조식 발자취 가득

- 매년 걷기행사 전국서 발길
- 마사토 깔려 맨발 걷기도 가능
- 회남정 서면 악양들 한눈에
- 잔설 운치에 ‘한 폭의 그림’

경남 하동군 악양면 등촌마을과 청암면 묵계마을을 잇는 회남재는남다른 의미를 갖는 도로다. 두 지역을 연결하는 소통의 길이기도 하지만 남명 조식선생이 지리산 등정 과정에서 청학동을 찾다가 되돌아 간 ‘선비의 길’이자 이상향의 길이기도 하다.
   
양 들판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회남재 정상의 회남정.
옛 선비들은 ‘어진사람은 산을 즐긴다(仁者樂山)고 한 공자의 말을 쫓아 명산 찾기를 즐겼다. 신라시대 대학자인 최치원은 가야산에서 만년을 보냈고, 퇴계는 청량산에서 독서를 즐겼으며 성운은 속리산에서, 임훈은 덕유산에서 산림처사로 지내면서 유학을 세상에 전파했다.

남명 조식 선생도 만년을 천왕봉이 보이는 덕유산에 은거하면서 일생 동안 지리산을 열두번이나 찾았다고 한다.

회남재는 남명 선생이 청학동을 찾아 헤매다가 돌아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산길이라고는 약초꾼이나 포수꾼의 이동로가 아니면 사찰을 오가는 승려들의 통행로가 전부였다.따라서 선비가 도포까지 입고 험한 산을 올랐다는것은 그만큼 가볼만 한 가치가 있는 길 이었던 모양이다.

하동군은 회남재에서 옛 조상들의 애환을 느껴보고 선비들의 산 사랑을 되새기면서 힐링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 올해 네번째로 전국규모의 걷기행사를 벌이는 등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있다.

이 길은 드라이버 코스로도 좋지만 걷기를 원한다면 다면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는 시간도 염두에 두고 출발해야 한다. 요즘처럼 낮이 짧은 날에는 산에 어둠이 빨리오기 때문에 오후 5시 정도면 하산을 끝내는 게 적당하다.

■회남재의 시작

   
회남재라는 명칭은 남명선생이 청학동을 찾다가 돌아왔다고 해서 붙여졌다. 남명선생의 추억을 더덤어 보고 싶다면 악양면 등촌마을쪽에서 청암면 묵계마을 방향으로 넘어가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하동군은 차량 주차가 용이한 청암면 묵계리 삼성궁 주차장에서 걷는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남명선생이 1558년 4월 진주를 출발해 사천의 쾌재정 나루에서 배를 타고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 악양으로 갔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남명선생 행적을 쫓을 려면 악양면쪽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걸어보자.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최 참판댁 아래 쪽 지방도를 따라 10여㎞를 곧장 가면 이름없는 작은 교량과 간이 화장실이 나오고 길 옆에 등산로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서 회남재쪽으로 방향을 틀어 7~800m를 더 가면 왕복 2차선의 아스팔트 길을 만난다.이 길 끝나는 지점이 등산로의 시작이다. 위험을 알리는 입간판과 수렵금지를 알리는 표시판이 여럿 눈에 띄지만 ‘반달가슴곰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하라’는 작은 플랭카드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걷는 길의 시작은 초입부터 약간 지루했다. 악양골에서 불어온 바람으로 인해 낙엽이 군데군데 쌓여 걸음을 더디게 했지만 너비 4~5m의 임도가 온통 시멘트로 포장돼 발걸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30여분을 올랐더니 회남재 정상이 나타났다.

악양들이 카펫처럼 내려다 보이는 해발 740m의 고갯마루에 정자 하나가 서 있다. 회남정이다. 남명선생이 악양이 명승지란 말을 듣고 찾아왔다가 돌아갔다 하여 회남재라 부른다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험한 길을 헤쳐 오다보니 도포를 입은 선비가 가솔까지 거느리고 길도 시원찮은 이 곳까지 왜 왔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청학동을 찾아 헤매다 돌아갔다는 말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정자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니 좌측의 구재봉과 우측의 형제봉 능선이 양 손바닥을 펼린 듯 악양면 전체를 오롯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 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선을 찾아 헤매던 이상향의 길

   
지난 10월 청암면 삼성궁 주차장에서 시작된 회남재 숲길 걷기행사에서 600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회남정을 뒤로하고 청학동 삼성궁으로 길을 재촉했다.청암면 묵계마을까지 6㎞는 이상향으로 가는 ‘은둔의 길’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산세가 험해 길이 있을것 같지 않은데도 터벅터벅 걸어가다보면 구불구불한 길이 나온다. 끝이 없을 것 같다. 걷다가 뒤돌아 보면 낙엽이 떨어진 겨울인데도 산모퉁이에 막혀 왔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도통 가늠하기가 어렵다. 여름철이면 나뭇잎에 가려서 하늘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굴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등의 참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소나무가 듬성듬성 보인다. 낮은 산죽이 바람이 불면 휘휘 소리를 낸다.

하동군이 길 바닥에 마사토를 깔아 신발을 벗고 걸어도 좋을 것 같다. 구석진 곳이나 작은 나무 뒤에는 바람에 밀려온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고 응달에는 잔설이 얼어 붙어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 처럼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

인적이 드물어 평일에는 혼자 걷기에 적적할 것 같다. 두·셋 혹은 4~5명이 좋겠다. 이야기도 나누고 힐링도 하면서 고단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가기에 좋은 곳이다. 벼랑끝으로 멀리 청학동이 보였지만 두어시간을 걸어서야 삼성궁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남명은 왜 지리산인가

   
회남재 숲길 걷기행사에 동참한 참가자들이 맨발로 숲길을 걷고 있다
남명은 기행문인 ‘유두류록(遊頭流錄)’에 지리산을 등반한 날짜와 인물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여행 경로까지 적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오를 때는 열발짝에 한번 쉬고 열발짝에 아홉번 돌아보며 불일암에 갔다는 대목에서는 책상에서 공부만 하던 50대 후반의 선비가 겪은 등산의 어려움이 묻어난다.

“위로 올라 갈때는 한걸음 딛고 또 한걸음 더 내딛기가 힘들었는데 내려올때는 발을 들기만 해도 몸이 저절로 흘러 내리는듯 하다”며 “선(善)을 따르기는 산을 오르는것과 같고 악(惡)을 따르기는 내려올 때와 같다”고 한 대목에서는 선생의 산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것 같다.

그는 또“ 바다와 산 300리에서 3군자(한유한, 정여창, 조지서)의 자취를 하루동안에 보았다.물을 보고, 산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 셈이다”(看山看水看人看世)고 적었다. 이 책에서 보듯 남명선생은 자연을 유람하면서 경치만 보지않고 옛 사람을 생각하고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까지 조망하는 자세를 가졌던 것이다.

이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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