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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NIE] 민주주의 물꼬 튼 한국 현대사 결정적 순간

우리는 왜 1987년을 기억해야 할까?- 영화로 풀어본 대한민국 현대사 (국제신문 12월 21일자 7면 참조)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12-25 18:44:30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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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박정희 암살 사건 이후
- 곧바로 전두환 군부 정권 장악
- 이에 맞서 광주 등서 시민 저항

- 1987년 박종철 사망 알려지며
- 전국서 6월 항쟁 대대적 동참
- 군부 물러나고 민주 선거 도입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이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87년은 대통령직선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이 이뤄진 역사적인 해이기도 하다. 지금은 모든 국민들이 투표권을 행사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것이 현실화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축적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1987년의 개헌이 이뤄지기까지 겪어야 했던 3번의 중요한 전환점을 3편의 영화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때 그 사람들’과 10·26 사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한 하루를 그린 영화 ‘그때 그 사람들’(맨 위)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가운데),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 ‘1987’(맨 아래) 스틸컷. 각 영화사 제공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에게 암살된 하루를 그린 영화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집권을 한 박정희는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9년 암살당하기까지 무려 18년 동안 장기집권을 해 왔으며, 이에 반대하는 여론을 억압하기 위해 비민주적 정치를 강행해왔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기는 했지만, 지나친 성장은 엄청난 물가상승으로 이어졌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농민이나 공장근로자들의 거센 반발로 이어졌고, 야당에서의 반대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궁정동에 마련된 안가(특수 정보 기관 등이 비밀 유지를 위하여 이용하는 일반 가옥)에서 술자리를 가지던 중 박정희는 최측근이라 믿었던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숨지게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또 한번의 큰 소용돌이에 진입하게 된다.

■‘택시운전사’와 광주 5·18

현직 대통령이 암살당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1979년 10월 26일 이후, 또 한 번의 군사쿠데타가 발생한다. 당시 군인이었던 전두환이 군부를 이용해 정권을 장악한 것이다. 이에 국민들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갔는데, 이를 ‘서울의 봄’이라 부른다. 1968년 동유럽 민주화운동을 일컫는 ‘프라하의 봄’에 빗댄 비유였다. 당시 군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는데 이에 대항하는 10만 여명의 사람들이 1980년 5월 15일에 서울역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전개했다. 그리고 5월 17일에는 전국으로 비상계엄이 확대됐고, 다음날 광주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군인과 시민들이 대치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1988년 공식발표에 따르면 사망 191명, 부상 852명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최근에도 암매장된 시신이 발굴되는 등, 구체적인 인명피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장훈 감독의 영화 ‘택시운전사’는 당시 광주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펜터, 그리고 그를 도왔던 택시운전사와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도 그려지듯이 당시 정권은 신문과 방송을 철저히 통제해 대부분의 국민들은 광주에서 군대가 시민들에게 총을 쏘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러한 소식은 힌츠펜터와 같은 외국인 기자들이 몰래 잠입해 취재한 내용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게 됐다.

수많은 희생자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은 지속되었다.

■‘1987’과 6월항쟁

1987년 1월 14일.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살 대학생이 시신이 되어 돌아온다. 당시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영화 속 대사와 같은 말로 사인을 설명했다. 하지만 한 언론인의 보도에 의해 그의 죽음은 경찰의 고문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그렇게 뒤늦게 억울한 죽음을 알리게 된 청년이 바로 박종철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혜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언어학과에 진학했던 박종철은 촉망된 미래를 보장받는 청년이었지만 그가 택한 길은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것이었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전국에서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벌어진다. 이를 ‘6월 항쟁’이라 일컫는다. 이후 전두환 정권은 물러나게 되고, 대통령을 모든 국민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대통령직선제’를 주요 내용으로 한 개정 헌법이 선포되게 된다.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은 박종철의 사망을 세상에 알리려는 사람들과 이를 은폐하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라는 영화의 홍보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종철의 죽음은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라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박종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선미(사회자본연구소 대표)
김정덕(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NIE 강사)


■생각해보기
‘그때 그 사람들’ ‘택시운전사’ ‘1987’ 세 편의 영화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한 전환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내용을 토대로 아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 1979년 10·26 사태 :

-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

- 1987년 6월항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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