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계획시설 묶여 집수리 못해

- 벽면 부서지고 문틈새로 찬바람

- 영도구 특별교부세 45억 신청

- 국회의원까지 나서도 확보 못해

- 주민 “희망 안고 버텼는데 황당”

매서운 한파가 불어닥친 11일. 돼지가 사는 움막보다 못한 주거환경으로 ‘움막촌’이라 불린 부산 영도구 봉래동 주택가에 자리잡은 한 주택의 지붕이 강풍에 들썩였다. 타이어로 천막을 덮었지만 주변 곳곳에 부서진 슬레이트 지붕은 강풍의 위력을 잘 보여줬다.

이곳에 50년 넘게 사는 김태권(67) 씨가 이끄는 대로 주택가 안으로 들어갔다. 성인 한 명이 어깨를 펴고 걷기 힘든 골목에서 주택 벽면을 만지니 모래가루가 부서져 내렸다.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천장을 나무 판자가 막고 있었고, 그마저도 막지 못한 부분은 슬레이트 지붕이 훤히 보였다.

“구청 직원한테 여기서 열흘, 아니 하루라도 살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답을 못 해요. 그러면 제발 새로 지을 수 있게 도시계획을 풀든 보상금을 주고 나갈 수 있게 하든 무슨 수를 써달라고 사정사정했어요. 국회의원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줄 알았더니 다시 제자리네요. 이번 겨울을 또 어떻게 날지 걱정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이 동네는 1965년부터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도로)로 묶인 탓에 신축이 금지됐고 이후 극심한 노후화에 직면했다. 지난 5월 이 소식이 본지를 통해 알려지자 영도구는 해당 주택 10여 채를 매입하기 위해 하반기 특별교부세에 45억 원을 신청(본지 지난 5월 29일 자 8면 보도)했고 김무성 국회의원도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영도구는 행정자치부로부터 최종 불허 통보를 받았다고 11일 밝혔다.

김무성 의원 측은 “같은 사업으로 특별교부세 20억 원이 2014년 영도구에 배정됐다. 행자부는 3년이 지나지 않은 같은 사업에 특별교부세를 준 적이 없어 최종 불허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영도구는 2014년 10월 ‘부산대교부터 대교초등학교 도로확장’ 특별교부세 20억 원을 받아 총 370ｍ 가운데 252ｍ를 확장했다. 나머지 118ｍ 구간 중 40ｍ가 논란이 된 노후 주택촌이 포함된 구간이다. 

영도구 예산 편성 담당자는  “내년 상반기 특별교부세 1순위나 부산시 특별추진교부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현재 60~80대 주민 8명이 이 지역 다섯 가구에 산다. 대다수 거동이 불편한 노년층이다. 부산대교를 타고 넘어온 차량이 1분에 한 대꼴로 집 앞을 다녀 위험한 상황이 여러 번 빚어졌다. 20년 전 이곳으로 와 시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사는 장희옥(58) 씨는 “곧 해결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버텼다. 남의 화장실보다 못한 집을 놔두고 어디 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보상금이라도 받아야 한다”며 토로했다. 사방에서 스며드는 한기에 그는 몸을 움츠렸다.

붕괴 위험에 놓인 주거환경과 영세 주민을 두고도 손 놓은 구에 주변 주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봉래1동 이남희 11통장은 “도로가 난다고 해서 곧 보상도 받고 다른 곳에 살게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안 됐다고 하니 황당하다. 영도 관문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성토했다. 2년 전 자녀들의 도움으로 32년을 살다 인근 아파트로 떠난 장모(70) 씨는 “죽은 남편이 햇빛만 들어오면 좋겠다고 했는데 끝내 새집으로 이사가는 걸 보지 못했다. 자식들 덕분에 나는 운 좋게 이곳을 벗어났지만 남아 있는 주민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