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팀이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선진사례 탐방 프로그램으로 일본 돗토리 현을 찾았다.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일본의 스토리텔링 콘텐츠. 그들의 강점은 무엇인가. 두 차례에 걸쳐 알아본다.

- 돗토리 현 사카이미나토 시 ‘요괴마을’
- 기차 버스 가로등에도 스며든 요괴가
- 쇠퇴한 이곳에 수백만 명을 끌어들여

- 코난 원작자의 고향 호쿠에이초 마을은
- 피규어 등 소유욕 부르는 코난 굿즈와
- 지역명소와 추리 결합한 투어상품 개발

- 관광객 동선 계산한 쇼핑몰 운영하며
- 발상전환과 일관성 있는 ‘진정성’ 통해
- 만화 기반 ‘스토리노믹스’ 성공 시켜

코난 박물관으로 알려진 ‘아오야마 고쇼 기념관’ 앞의 코난 동상. 돗토리 현의 대표 캐릭터로 지역 경제 부흥을 이끌고 있다.

돗토리 현에는 만화 주인공 ‘기타로’와 ‘코난’의 이름을 딴 ‘요나고 기타로 공항’과 ‘돗토리 코난 공항’이 있다. 만화 주인공의 이름을 공항명으로 내세운 돗토리 현의 의지는 만화에 대한 열린 마인드와 미래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만화 스토리텔링을 활용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 위기를 기회로 바꾼 ‘요괴 왕국’

'미즈키 시게루 로드'의 인기 캐릭터 눈알요괴.

돗토리 현 북서쪽, 우리나라 동해와 맞닿은 곳에 위치한 사카이미나토 시는 인구 3만 5000여 명의 작은 어촌으로 한때 수산물 생산 전국 1위로 명성을 날리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1992년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 불황이 시작되자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쇠퇴해졌다. 그때 이 고장 출신의 유명한 요괴만화 1인자인 미즈키 시게루와 그의 대표작 ‘게게게노 기타로’를 활용해 마을을 살려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미즈키 시게루는 자신의 고향을 살리는 프로젝트에 흔쾌히 동의했다. 금액으로 치면 얼마가 될지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요괴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을 마음대로 써도 좋다고 승낙한 것이다.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도 하나 둘 자신의 사재를 털어 요괴 청동상을 기증하면서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사카이미나토 시는 1993년 공사를 시작해 2003년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을 개관하면서 ‘미즈키 시게루 로드’를 완공했다. 마을에 불어 닥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요괴 왕국, 미즈키 시게루 로드는 연간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요괴 명소가 됐다.

사카이미나토 역에서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까지 800ｍ에 이르는 미즈키 시게루 로드의 콘셉트는 요괴다. 전세계 요괴들이 모여 세계요괴회의를 열기도 한다. 상점과 관공서는 물론 요괴기차, 요괴버스, 요괴택시, 요괴눈알 가로등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재미있는 요괴 캐릭터로 형상화 해 놓았다. 거리 곳곳에서 주민들이 기증한 150여 기의 요괴 청동상을 손으로 직접 만져 보고 사진 찍고 기기묘묘한 표정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타로, 농농할멈, 해골 등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요괴 포토 모델들은 즐거운 추억거리를 선사한다. 죽으면서 눈알 하나로 부활한 기타로의 아버지 눈알요괴는 특히 인기가 높다. ‘눈알신사’까지 있다. 그곳에서 기도를 하면 요괴의 기운이 전해 온대나 어쩐대나. 거리 양쪽으로 즐비한 상점에는 지역 토산품과 요괴캐릭터 상품,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로 가득하다. 사람의 눈알을 씹어 먹는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상은 이곳에서 현실이 된다. 기념관 앞 식품연구소에서 파는 눈알경단은 사람들의 눈 위에서 포토 모델로 뽐내다가 임무를 마치면 사람들의 이빨 사이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별별 요괴들이 다 있다.

작가의 히스토리와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는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은 필수 방문 코스. 1922년생인 미즈키 시게루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22살 때 필리핀 라바울 전선에서 폭격으로 왼팔을 잃었다. 이후 그는 평생 팔 하나로 만화를 그렸는데 그의 참전 경험은 전쟁의 잔인함과 참상을 담은 전쟁만화로 살아났다. 특히 작가 자신이 만화 속 주인공이 돼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의 ‘종군위안부’라는 제목의 만화 속에는 전쟁 중에 만났던 조선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병사들도 지옥에 있었지만 위안소는 지옥 그 이상이다. 도저히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라며 위안부에 대한 작가 자신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외국에서보다 오히려 일본 자국민에게 인기가 높은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는 자신의 명함에 ‘만화가’보다 먼저 ‘모험가’를 기재했다고 한다. 평생 전세계 요괴들을 찾아 여행과 모험을 즐겼으며 모험 속에서 찾아 낸 일본과 전 세계 요괴들은 그의 만화 ‘게게게노 기타로’의 등장 인물이 됐다.

■ 범인 찾기 ‘미스터리 투어’

미즈키 시게루 로드에 있는 요괴창고.

돗토리 현 도하쿠군 호쿠에이초 마을은 만화 ‘명탐정 코난’의 원작자인 아오야마 고쇼의 출생지로 코난 박물관으로 알려진 ‘아오야마 고쇼 기념관’이 있다. 돗토리 현은 1999년부터 JR(일본철도) 유라역과 국도 9번을 연결하는 도로를 ‘코난 거리’로 명명하고 7개의 동상을 설치했으며, 2007년 아오야마 고쇼 기념관을 설립했다. 또한 ‘코난’을 돗토리 현의 대표 캐릭터로 내세우며 코난 굿즈를 판매하는 ‘코난 탐정사’가 지역 주민에 의해 설립돼 지역 경제 부흥에 앞장서고 있다.

아오야마 고쇼 기념관은 작가의 히스토리와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관람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체험 코너 등을 운영한다. 작가의 유년시절, 학생시절의 사진, 일기, 그림 등 성장 과정과 재현해 놓은 작가의 실제 작업실은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또한 이곳에는 추리만화 ‘명탐정 코난’의 미스터리 속성에 관람객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인터렉티브 전시물이 구성돼 있어 인기다. 작품 속 발명품인 코난의 나비넥타이형 변성기로 목소리를 변조해 보는 체험, 입장권을 이용한 3D 캐릭터 영상 체험, 터보 엔진을 장착한 스케이트보드 체험 등 최첨단 IT기술을 접목한 각종 트릭이나 퀴즈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1994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연재되고 있는 ‘명탐정 코난’ 시리즈는 1997년부터 매년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제작·상영하고 있는데, 2016년에는 흥행 수입이 30억 엔을 초과했다. 20년이 넘는 장수 연재만화의 인기는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게임 등으로 미디어믹스되고 있는데 그에 따라 코난 굿즈도 다양하다. 폭넓은 연령대의 코난 굿즈 마니아층을 두고 있다. 기념관에서 방문객들의 마지막 코스인 코난 굿즈숍은 이들에게 있어 천국이다. 피규어, 퍼즐 보드, 티셔츠, 목걸이, 우산, 입욕제, 키홀더, 스마트폰 케이스, 가방, 담요, 쿠키 등 없는 게 없다. 이곳은 일본의 80여 개 만화박물관 중 가장 성공한 모델로 손꼽힌다.

‘코난 투어’로 명명되는 ‘미스터리 투어’는 추리만화 ‘명탐정 코난’의 만화 콘텐츠 이용자들을 지역과 연계해 관광상품화 한 대표적인 사례. 관광객들이 직접 작품 속에 뛰어들어 탐정이 되고, 범인의 단서를 추적해 가는 인터렉티브 프로그램이다. 작가는 미리 사건의 무대가 되는 지역의 관광 명소를 중심으로 범인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들을 숨겨 놓는다.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먼저 JR과 숙박권이 세트로 구성된 ‘여행 플랜’을 구매해야 한다. 여행 플랜에는 관광 지역의 지도, 다양한 할인권을 비롯해 범인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 등 중요한 정보들이 들어 있다. 투어 참가자들은 주어진 단서를 따라 관광지를 돌면서 증언, 증거 등을 수집해 범인을 추리한다. 보통 몇 개월에 걸쳐 운영되는 투어가 끝나면 주최사는 지면을 통해 범인을 발표하고 가장 정확한 추리를 한 참가자에게 소정의 상품을 지급한다. 2001년부터 시작된 미스터리 투어 관광프로그램의 참가자 수는 해마다 2만 명이 넘는다.

■ 완벽한 관광교통 인프라

공항 로비의 비행기탄 기타로와 눈알요괴.

아무리 콘텐츠가 좋다고 해도 접근성이 떨어지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 돗토리 현은 JR패스권을 가지면 기차,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렌터카도 마찬가지다. 목적하는 관광지의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내비게이션이 정확히 여행객들을 해당 관광안내소가 있는 주차장으로 안내한다. 대부분 무료 주차장이다. 주차를 하고 관광안내소에 들어가면 그 지역 세부관광지도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불편함이 없다. 부산은 주차장, 관광안내소, 세부관광지도 등 관광교통 인프라가 부족해 늘 아쉬운 느낌인데 비해 돗토리 현 관광교통 인프라 구축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 계산된 동선

코난을 캐릭터로 한 각종 상품들.

일본의 관광지는 쇼핑몰 운영에 있어 두 가지 방향에서 관광객의 동선을 고려하는 듯이 보인다. 우선 모든 관광지 동선의 마지막을 쇼핑몰로 향하게 한다. 출구가 쇼핑몰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관광객들이 보고 듣고 맛보았던 관광지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전에 주머니를 열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마을 전체를 슬로우화 해 느릿느릿 걷게 만든다. 걸음이 느려진 관광객들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든 물건이나 토산품 등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치밀하게 계산된 동선이다.

■ 디테일에 강하다

일본은 디테일에 강하다. 냄새나야 할 것 같은 하수도에 잉어와 피라미, 청둥오리가 노닐고, 생활하수가 배출되는 하수구 주변에는 자잘한 분홍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어 사람의 마음을 앗아 간다. 먹는 과자, 빵 하나에 섬세함이 살아 있다. 마을의 담장을 이루는 벽돌은 제 각각 개성을 담고 있다. 디테일은 관광객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돗토리 현 미즈키 시게루 로드와 아오야마 고쇼 기념관은 스토리노믹스의 좋은 예다. 만화라는 원천 콘텐츠를 새로운 관광상품의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만들어 지역 경제를 살리고 미래 먹거리를 마련하는 장을 열었다. 돗토리 현의 이러한 성과는 사물을 해석하는 발상의 전환, 협력하는 열린 마인드, 정치적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정책의 일관성 같은 ‘진정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좋은 스토리텔링 콘텐츠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진정성이 없는 콘텐츠는 가짜다. 외형만 번지르르한 콘텐츠는 금방 무너지고 사라진다. 오래된 것, 옛 것은 낡은 것, 진부한 것이라 여기며 땅을 갈아엎고 그 위에 80층, 100층의 콘크리트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것에만 열중하며 스스로 아름다운 꽃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김민수 극작가

공동기획: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