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후 신축건물 우후죽순 가능성
- 감천문화마을처럼 보존책 필요

한국의 산토리니섬으로 불리는 부산 영도구 흰여울마을이 난개발 위기에 처했다. 도시계획상 지구단위계획 등 안전장치가 없어 마을의 정체성과 원형을 보존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5일 부산 영도구 흰여울마을에 K건물 신축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곽재훈 전문기자 kwakjh@kookje.co.kr

부산 영도구는 흰여울마을 중간에 대지면적 586㎡(177평), 건축면적 313㎡(94평)에 7층(지상 4층, 지하 3층) 규모의 K 건물 건립을 지난 9월 허가했다. 흰여울마을공동체 등 마을 주민들은 이미 지난 3월부터 K 건물의 신축 허가를 반대하는 행정민원과 진정서를 영도구에 제출했다. 흰여울마을의 정체성을 해치고 그간의 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에 역행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흰여울마을은 해방 이후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피란민과 실향민이 33㎡ 남짓한 1, 2층 규모의 주택을 세워 들어선 마을이다. 2000년대 들어서 영도구를 중심으로 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이 본격화돼 ‘무한도전’ 영화 ‘변호인’ 촬영지로 인기를 끌었다. 2014년 7월부터는 국·시비 38억 원을 들여 마을입주 예술작가와 주민을 중심으로 흰여울 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 중이다.

5일 흰여울마을에는 경기와 대구 등에서 온 관광객이 줄을 이었지만 마을 곳곳에는 ‘K 건물 신축 건립 반대’ 현수막이 내걸려 이와 대비를 이뤘다. K 건물이 내년 상반기 들어설 예정인 땅에는 울타리가 설치됐다. 풍광을 촬영하러 온 박성진(29·부산)씨와 김민정(29·서울) 씨는 “절벽에 주민 터전이 형성되고 자연경관이 보존된 소박한 마을을 보러 왔다. 이런 곳에 신축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건 마을만의 고유의 멋을 버리는 일”이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흰여울마을공동체가 받은 K 건물 신축 반대 서명에는 관광객 1000여 명이 동참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K 건물처럼 신축 건물 건립을 막을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영도구 건축과 관계자는 “국유지와 사유지를 매입해 허가를 신청하면 현행 건축법상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간 마을회관이나 노인정, 주차장 등 주민 편의시설도 없이 문화마을 만들기에 앞장섰던 주민은 원성을 쏟아냈다. 김양미 공동체 회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K 건물을 시작으로 각종 신축 건물이 중구난방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토로했다.

박성윤 영도구의원은 최근 행정사무감사에서 “흰여울마을의 도새재생사업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관련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감천문화마을처럼 난개발을 막을 지구단위계획 등 근본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하구는 마을의 원형과 정체성을 보존해야 감천문화마을의 활성화가 이뤄진다는 공감대 아래 프랜차이즈 업체 입점을 막고 건축물 높이를 규제하는 ‘감천문화마을 보존형 지구단위계획’을 지난달 수립했다.

경성대 강동진(건설환경도시공학부) 교수는 “지역의 경관과 특성, 맥락을 지키고 관리할 수 있는 원칙이나 계획을 부산시와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도구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21일 흰여울마을 주민과 한 간담회에서 “무허가 마을을 뜯어내고 빌라촌을 지으면 좋겠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최민정 기자 m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