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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몸노인 보호자로 서명해주고 빚더미

이웃주민, 요양병원 입원 도와…노인 사망 후 1100만 원 청구, 통장 압류 당하고 추심 시달려

전세금 받은 친척들 연락 끊겨…지자체 도움 요청했지만 퇴짜

  • 국제신문
  •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
  •  |  입력 : 2017-11-10 20:56:07
  •  |  본지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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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좌천1동에 사는 서모(60) 씨는 아직 8년 전 그날 밤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재, 내 몸이 너무 아픈데 병원 좀 데려다주면 안 되나.” 2009년 6월 늦은 밤, 이웃에 홀로 사는 기초수급대상자 문모(여·당시 76세) 씨가 고통 속에서 서 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문 씨의 다리에 난 종기는 곪을 대로 곪아 진물과 악취가 진동했다. 20년 넘게 이웃으로 지내며 한때 자신의 집에 세를 들어 살기도 했던 문 씨의 부탁을 서 씨는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문 씨를 병원에 데려간 일이 자신을 1000만 원 넘는 빚더미 위에 앉혀놓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이웃을 도왔다가 채권 추심에 시달리는 서모(60) 씨가 해당 병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수술하고 입원하려면 보호자 서명이 필요합니다.” 부산 A 요양병원 측 설명에 서 씨는 보호자란에 서명했다. 오랜 이웃인 서 씨는 문 씨에게 남편이나 자식은커녕 찾아오는 친지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 씨는 1100여 일을 입원했고 2012년 8월 3일 지병으로 숨졌다.

치료비 총액 8669만 원. 그런데 이 중 공제분 등을 제외한 치료비 1130여만 원은 서 씨에게 청구됐다. 처음 입원할 때 서명을 남긴 보호자라는 이유에서다. 황망해진 서 씨는 좌천1동 주민센터에 도움을 구했다. 주민센터는 전라도에 사는 문 씨의 먼 친척들에게 연락했고 친척들이 부산에 왔다. 서 씨는 문 씨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전세자금이 병원비를 치를 만큼은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친척들이 그 돈을 상속받으면 병원비를 내주겠죠.” 서 씨도, 주민센터 직원들도 그렇게 믿었다.

친척들은 공탁돼있던 문 씨의 전세금 1160만 원을 2013년 5월 29일 상속인 자격으로 받았다. 그 사이 A요양병원이 청구한 치료비 1130여만 원과 서 씨의 정보는 추심업체로 넘어갔다. 서 씨는 “병원비를 좀 해결해달라”고 문 씨의 친척들에게 연락했지만, 어느 순간 이들은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며 연락을 끊었다. 300만 원가량이 든 서 씨의 은행 계좌가 압류됐다. 그는 다시 주민센터에 사정했지만 이들은 “개인정보라 친척들 연락처는 알려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서 씨도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자 추심 연락은 뜸해졌다. 그런데 서 씨는 최근 은행에 들렀다가 압류된 계좌에 든 돈이 그대로 남은 사실을 알았다. “나는 문 씨와는 친척도 아니고, 도의로 병원에 데려다준 사람입니다. 이 돈 가져가고 끝냅시다.” 울컥한 마음에 서 씨는 A 요양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지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서 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추심업체였다.

문 씨를 도와준 일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서 씨는 답하지 않았다. 문 씨는 동구 토박이 공무원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기억할 정도로 지역 봉사활동에 열심인 사람이었다. 서 씨는 동구와 부산시에 도움을 청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법률구조공단에도 민원을 넣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나더러 뭐 때문에 책임도 못 질 서명을 했냐고 하던데요. 이제 길 가다 쓰러진 사람을 봐도 지나쳐야겠습니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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