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마항쟁 10주년 자료집서
- “타살체” 부친 사망 개요 발견
- 검찰 검시보고서엔 ‘뇌출혈사’
- 동의 없이 부검·야산 가매장도

- “진상규명위 3년 활동 졸속
- 의지없고 철저한 조사 외면”
- 기간 연장·새 조사위 호소

“아버지의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진상조사 기간을 반드시 연장해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심의위원회의 진상조사 기간이 다음 달 6일 끝난다는 소식(본지 지난 18일 자 1·4면 보도)에 유성국(56) 씨는 울분을 토했다. 성국 씨는 부마민주항쟁 기간 유일한 사망자인 유치준(당시 51세) 씨의 아들이다. 그는 20일 “박근혜 정부 3년간 진실 규명은커녕 자료 수집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사 기간을 반드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경찰은 ‘타살’, 검찰은 ‘뇌출혈사’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경남 마산에서 사망한 고 유치준 씨의 아들 유성국 씨가 20일 정부의 진상조사가 부실하다며 분노하고 있다. 유성국 씨 제공

성국 씨에 따르면 아버지 유 씨는 부마민주항쟁 시위가 격렬했던 1979년 10월 18일 경남 마산의 집을 나섰다가 10여 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외박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아버지였기에 성국 씨는 경찰서와 마산시청을 돌아다니며 생사를 확인했으나 허사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경찰이 마산시 산호동 새한자동차 앞 도로에서 유 씨의 주검을 발견하고 하루 만에 부검한 뒤 서원골의 한 야산에 가매장했다는 것이었다. 성국 씨는 경찰을 따라 어머니와 야산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했다. 흙으로 시신을 살짝 덮어놓은 상태였던 아버지를 확인한 성국 씨는 하염없이 울었다. 당시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가족의 동의도 없이 아버지를 부검하고 가매장한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어요. 당시 시위 진압과 아버지의 죽음이 연관돼 있을 거라 의심했으나 증거가 없어 입을 닫았습니다.”

성국 씨가 ‘희미한 진실’ 앞에 한 발 다가선 건 32년이 지난 2011년이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 1989년 부마민주항쟁 10주년을 기념해 펴낸 자료집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자료집에는 지역신문 기자가 경찰의 ‘마산 경남대학교 소요사업 1차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한 아버지의 사망 개요가 적혀 있었다. ‘새한자동차 영업소 앞에서 50세로 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왼쪽 눈에 멍이 들고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음. 얼굴 둥근 편. 키 160cm. 정황으로 판단, 타살체가 분명함’.

성국 씨는 사망 장소와 옷차림·나이가 모두 아버지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1979년 창원지검이 작성한 아버지 유 씨의 검시보고서에는 ‘뇌출혈사. 타살 혐의없음. 사체 유족에 인도’라고 적혀 있었다. 타살체가 분명하다는 경찰의 기록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 “진상규명위가 철저한 조사 외면”

1979년 10월 창원지검이 작성한 유치준(오른쪽·제560호) 씨의 검시보고서. 유성국 씨 제공

성국 씨는 “사체를 유족에게 인도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받지 못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검찰이 아버지 사망 사건을 숨기기 위해 검시사건부를 날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2014년 10월 출범한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성국 씨는 진상규명위를 찾아 아버지를 부마항쟁 피해자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다. 진상규명위는 접수 신청을 한 지 1년이 지나서야 연락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성국 씨는 “당시 한 조사위원이 ‘아버지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진실을 규명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지난해 5월 신청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성국 씨는 지금이라도 진상조사 기간이 연장돼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측 인사들로 구성된 진상규명위는 이미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했습니다. 새로운 진상조사위가 구성돼 늦게라도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길 간절히 원합니다.”

한편 지난 3년간 파행을 겪은 진상규명위의 활동은 관련자 신청자 인용 수만 보더라도 확인된다.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1600여 명 중 부마항쟁보상법의 까다로운 조항과 진상규명위의 소극적인 활동으로 인해 10%가량인 194명만 신청해 166명이 인용되고 28명은 기각됐다. 이는 관련자 외에 목격자, 희생자 가족 등 주변인만 7000여 명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진 제주 4·3항쟁 진상규명 과정과는 대조적이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