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초 수정동 지으려다 주민 반발
- 부산시 “노인·노숙인 상생시설”
- 전문가 “향후 갈등 재발 소지”

부산시가 노숙인의 재활을 돕는 전문시설을 지으려다가 민원에 부딪히자 노인복지관 건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예산까지 확보한 공공시설이 님비(NIMBY)에 막히자 아예 용도를 바꾼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부산시는 코레일과 부산교통공사 소유인 동구 좌천동 철도용지 1275㎡에 건설하려던 노숙인종합지원센터(3층 규모) 사업을 중단한다고 17일 밝혔다. 그 대신 65세 이상 노인과 노숙인이 공동 사용하는 노인복지관 건립을 추진한다. 노인복지관에는 경로식당과 노인복지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르면 10월 착공에 들어가 내년 말 준공이 목표다. 예산은 34억 원이다.

원래 부산시는 부산진역 광장에 있는 무료급식소가 코레일의 개발계획에 따라 이전해야 할 형편에 놓이자 노숙인전문시설 ‘희망드림지원센터’를 짓기로 했다. 2015년에는 기획재정부의 복권기금 20억 원도 지원받았다.

최초 후보지는 부산진역에서 직선거리로 400여m 떨어진 동구 수정동 부산시상수도사업본부 소유의 터였다. 그러나 “집값이 내려간다”는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현재의 좌천동으로 옮겨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자 또 집값 하락과 도시미관을 이유로 근처 주민이 반대하고 나섰다. 주민을 설득해야 할 동구의회는 물론 박삼석 동구청장도 반대했다. 그러자 시민단체들은 “노숙인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정책을 마련해야 할 행정기관이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해 갈등을 빚었다.

결국 부산시는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자 노숙인전문센터 대신 노인복지관 건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내부 시설도 ▷무료급식소 ▷노숙인 취업·재활을 돕는 종합지원센터 ▷쪽방상담소 ▷노숙인들이 겨울나기를 하는 쉼터와 목욕탕 대신 노인 시설로 변경됐다. ‘노숙인을 위한 시설’에서 노숙인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변질된 것이다. 일부 주민은 노인복지관 설립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는 “노숙인과 노인이 상생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사회복지사 2명을 상주시켜 노숙인의 재활을 돕고 한편으로는 노인에게 피해를 주는 노숙인 출입은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또 노숙인을 배식 도우미로 활용해 임금을 지급하는 계획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노인복지관에 노숙인이 들어오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분위기가 생기면 언제든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부산밥퍼나눔공동체 손규호 본부장은 “노숙인들을 위한다던 시설이 모든 자치단체에 있는 노인복지관이 돼버렸다. 장소를 바꿔서라도 노숙인센터를 재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시 담당자는 “지역주민 입장도 고려해야 해 노숙인만을 위한 시설은 짓기 어려워 절충안을 만든 것”이라며 “향후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노숙인과 주민이 상생하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지난 7월 기준 869명의 노숙인이 있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