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토니아 민족시인 코이둘라 기념 공원과 누드가 주제인 박물관은 지척에 있다
- 국제 누드예술쇼를 1994년부터 열고 있는 신예술박물관은
- 인간의 성정체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패르누(Parnu)로 가고자 한 것은 도시 그 자체의 매력 때문이라기보다 에스토니아( Estonia)의 수도 탈린(Tallinn)과 대학 도시 타르투(Tartu)를 거쳐서 라트비아(Latvia )로 가는 교통의 편의성 때문이었다.

이동하기 위해서 잠시 머무르는 숙소에서 특별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다가 만난 ‘제24회 누드 예술 쇼, 남성, 여성, 바다’라는 포스터의 유혹으로 ‘신예술박물관(The Museum of New Art)’이 바로 목적지가 된다.

에스토니아 패르누의 신예술박물관에서 만난 다양한 그림들.

■먼저, 리디아 코이둘라 공원으로

‘누드 예술 쇼’라니! 그것도 2004년 유니세프(UNICEF, 유엔 아동 기금)로부터 인정받은 ‘어린이-청소년 친화 도시’, 어린이와 청소년이 함께 일을 하고 자기실현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갖춘 도시 패르누에서.

‘누드’와 ‘쇼’의 부정적 의미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60대 ‘노년’의 유교적 관습에 따라서, 발걸음은 박물관으로 향하다가 리디아 코이둘라 공원(Lydia Koidula park)에서 먼저 멈춘다.

공원은 에스토니아 민족 시인으로 불리는 코이둘라(새벽이라는 뜻의 필명, 1843년 12월 24일~1886년 8월 11일)에게 1925년 헌정된 것으로 아담슨(Amandus Heinrich Adamson)이 조각한 그녀의 동상 제막식과 함께 1929년에 문을 연다. 동상을 바라보며 모바일에서 그녀의 시 ‘나의 조국은 나의 사랑’(Mu isamaa on minu arm)의 영문 번역을 찾아 그 일부를 ‘당신의 고통은 내 가슴 속에 새겨지고/당신의 자부심과 기쁨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그리고 나는 쉬고 싶다/당신의 팔에 누워./(…)/당신의 새들은 나에게 잠을 노래하고/꽃은 나의 유골에서 피어날 것이다/나의 조국, 나의 조국’으로 다시 번역해 본다.

■24년째 열리는 누드 전시회

패르누 도심 공원에 있는 리디아 코이돌라 시인의 동상.

번역 시를 음미하면서 400ｍ쯤 걸어가면 신예술박물관을 만난다. 박물관은 1992년 설립된 에스토니아 최초의 현대미술 박물관이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문화시설과 휴양시설을 갖추어 가면서 1996년부터 패르누는 ‘에스토니아의 여름 수도’라고 불리게 된다.

그 이름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도착한 박물관은 작고 초라한 이 층 건물이긴 하지만, 1994년부터 ‘국제 누드예술 쇼- 남성과 여성’을 주최하여 2017년 현재 24회에 이른다.

박물관은 전시 주제를 ‘전통적으로 인체와 영혼의 조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하면서 해마다 하위 주제를 ‘기대, 꿈, 외계인 또는 다양한 예술적 해석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색조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설정한다. 큐레이터 수사어(Mark Soosaar, 71)는 2017년 슬로건을 ‘남성, 여성, 바다’로 정하고 그 주제를 ‘글이나 돌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도 소리나 이미지가 있다’고 하면서 ‘바다라는 예측 불가능한 곳에서의 열린 마음의 소통’을 설정했다고 한다.

■성(性)을 다시 생각해보다

슬로건이나 주제, 작가와 작품명을 적어 놓은 팸플릿을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누드 예술, 곧 미술, 조각, 사진, 영상 등은 남성만을, 여성만을, 남성과 여성을 누드로 구체적으로나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예술박물관의 누드 예술은 방문자를 혼란스러운 의문으로부터 놓아주지 않는다. 누드 예술을 보면서 방문자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동양인 방문객은 동서양 인물화의 가장 큰 차이가 누드화의 존재 여부임을 이해할까? 벌거벗은 나체(The Naked)와 계산된 의상으로 정교한 형식을 가진 누드(Nude)를 이해할까? 인간의 성이 생물학적 분류에 따른 남성과 여성뿐이며, 생물학적 성의 결합이 조화일까? 성적 정체성과 지향성에 따라서 인간의 성은 어떻게 나누어질까? LGBTAIQOC(Lesbian 여성 동성애자, Gay 남성 동성애자, Bisexual 양성애자, Transgender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의 불일치자, Asexual 무성애자, Intersex 남녀 한 몸, Questioner 성 의문자, Opensexual 범성애자, Crossdresser 복장 도착자)는 어떻게 성의 조화를 이룰까? 그 전시 기획으로 인하여 방문자들은 백야의 긴 밤을 인간의 성과 그 조화에 관한 생각의 밤으로 짧게 보낼지도 모른다.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것

신예술이 새로운 형식의 예술이 아니라 기존 예술을 바라보는 해석의 새로움이며, 누드 예술이란 누드로 표현된 예술이 아니라 예술 감상의 기존 태도를 완전히 벗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의문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를 되찾은 것은 며칠 뒤 리투아니아 빌뉴스( Vilnius, Lithuania)의 ‘제 3의 성’이라는 거리 전시회에서이다. 그 전시회를 통해서 여행이란 사람들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의 기성복을 스스로 벗게 만들고 새롭게 입어 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이 60여 개가 넘는 부산지역 박물관, 역사관, 전시관, 민속관, 예술관 등에서 새로운 감동으로 이어질 수는 없을까?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