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 조사 않고 '경고' 후 마무리
- 해당 판사 올초 변호사로 로펌행
- 당시 소속 법원장도 함께 영입돼

대법원이 조현오(61) 전 경찰청장에게 수천만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로 수사를 받던 부산의 한 중견건설사 실소유주로부터 수년간 접대를 받은 판사에게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해 불거진 전·현직 판검사들의 비리로 법조계의 자정 능력에 의문을 던지는 사건이 잇따르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여론은 더욱 힘을 받을 전망이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5월 부산지검 특별수사부(당시 김형근 부장검사)의 조 전 청장 뇌물수수 의혹 사건 수사다. 검찰은 조 전 청장에게 5000만 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던 건설업자 정모(53) 씨의 구속영장을 두 번 청구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당시 부산지법 박운삼·고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수뢰자로 지목된 인사의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또 피의자(정 씨)의 진술 경위를 고려할 때 신빙성이 낮다"며 정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정 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불출석한 가운데 영장이 연거푸 기각되자 검찰은 격앙됐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부산고등법원의 문모 판사가 정 씨로부터 수년 동안 10여 차례의 골프와 유흥주점 접대를 받은 점을 파악하고 대검찰청에 보고했다.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에도 통보했다. 다만 정식 '비위 통보' 공문이 아니라 '부산지검 수사 관련 사항'이란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도 "문건을 전달받은 바 있다"고 15일 밝혔다.

그러나 문 전 판사는 법원의 징계나 조사를 받지 않고 올해 1월 퇴직해 부산의 한 유력 법무법인에서 활동 중이다.

대법원은 "당시 소속 법원장을 통해 문 부장판사에게 품위유지의무 등 문제가 있음을 들어 엄중 경고 조처했다"며 "다만 이후 추가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아 사직서가 수리됐다"고 해명했다. 향응·접대 의혹 자체도 심각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직무 연관성에 따라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음에도 '엄중 경고'만 했을 뿐 공식적인 징계 절차를 밟거나 진상 규명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법원이 업자와 유착 의혹이 있는 판사의 비위를 사실상 눈 감아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감찰이 개시되면 법관은 감찰이 끝나기 전까지 사직을 할 수 없다. 징계가 이뤄질 경우 변호사 개업에 있어서도 제약이 따른다. 공교롭게도 당시 소속 법원장도 같은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로 올해 초 문 전 판사와 함께 영입됐다.

아울러 뇌물 사건과 관련해 조 전 청장과 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당시 1심 재판장은 문 전 판사와 대학 동문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조 전 청장은 항소심에서 기소된 5000만 원 뇌물수수 혐의 가운데 3000만 원만 수수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6월에 벌금 3000만 원을, 정 씨는 징역 8월을 선고받았지만 둘 다 법정구속은 면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16일 이 사건 상고이유 등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

송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