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도입 순위제 유연성 높여
- 집회 방해 줄고 결사 자유 확대

집회신고를 하고도 실제 집회를 열지 않는 이른바 '유령집회'가 사라졌다. 다른 집회를 막기 위해 집회신고를 먼저 하는 '방어용 집회'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개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시행에 따른 영향이다.

11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개정 집시법이 시행된 지난 1월 28일부터 지금까지 경찰이 유령집회 주최 측에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한 번도 없다. 개정 집시법은 집회 신고를 하고 실제 집회를 하지 않으면 예정된 시각 24시간 전에 철회 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위반하면 최고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경찰은 1회 위반일 땐 30만 원, 2회째는 50만 원, 3회째는 8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개정 집시법 시행 전에는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단체의 집회를 막으려고 미리 집회 신고를 하는 방법으로 장소를 선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아파트 분양 홍보관의 유령집회 신고가 잦았다.

지난해 6월 23일 수영구의 한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는 모델하우스 앞에 '홍보·캠페인' 목적의 집회 신고서를 제출하고 아무 행사도 열지 않았다. K건설사도 지난해 10월 15일 부산지방법원 주변 모델하우스에 홍보·캠페인 신고를 했지만 별다른 집회를 하지 않았다. 경찰은 "예전에는 아파트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이 집회를 여는 것을 막으려고 건설사들이 집회신고를 자주 했다"고 전했다.

앞서 이마트 노사협의회는 지난해 4월 12일 연제구 연산동 이마트 앞 인도에 홍보캠페인 집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경찰은 이마트타운 연제점 건립 추진으로 중소 상공인과 마찰을 빚고 있던 이마트 측이 '방어용'으로 집회 신고한 것으로 봤다.

올해는 이런 유령집회가 거의 없어졌다. 경찰은 유령집회가 처벌 대상이 되자 기업이나 기관이 시민·사회단체의 집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내는 집회 신고를 자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석 삼성전자서비스노동조합 해운대분회장은 "사측이 먼저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 앞을 집회 장소로 신고해 우리의 집회를 방해하곤 했는데 올해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다른 노동계 인사는 "예전에는 한 장소에 집회 신고가 먼저 접수되면 후순위 신고는 아예 받아주지 않았다. 노사가 서로 먼저 집회 신고서를 제출하려고 경찰서에서 밤을 새우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며 "2015년부터 2순위 신고(1순위 신고자가 집회를 하지 않으면 2순위 집회 가능)도 허용하면서 이런 일이 줄었다. 올해는 유령집회 과태료 부과로 집회 자유의 결사 보장이 더 강화됐다"고 말했다.

우려도 있다. 경찰이 실제 집회 개최 의지가 있는데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한 달 동안 집회 신고를 내놓고 그 중 며칠만 집회를 할 때가 있다. 경찰이 이런 경우도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정철욱 기자 jc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