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계 이황 선생도 반했던
- 경치 좋은 수승대서 시작
- 동계 정온 고택서 한숨 돌리고
- 거창의 소금강 강선대도 본 뒤
- 행기숲·용암정 거쳐 원점회귀
- 곳곳마다 역사 발자취 묻어나

경남 거창군은 삼국 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안의현에 속했다가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이 됐다. 거창군에는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산수유람 문화가 결합한 명승지가 즐비하다. 그래서 조성한 숲길이 거창이 품고 있는 역사·문화자원과 자연경관을 연결한 '문화유산 여행길(수승대 트레킹길)'이다.

	휴일을 맞아 탐방객들이 수승대 인근의 문화유산 여행길(수승대 트레킹길)을 걷고 있다. 김인수 기자

이 여행길은 문화재청에서 주관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에 선정된 '영남 선비들의 삶과 풍류의 흔적을 따라'란 작품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길을 걸으며 옛 선비들의 멋과 흥을 찾아 떠나보는 기회와 함께 문화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 수승대

문화유산 여행길에는 2개 코스가 있다. 1코스는 수승대에서 시작해 동계 고택과 모리재, 강선대와 농산리 고인돌, 만월당과 갈계숲, 행기숲, 용암정을 거쳐 다시 수승대로 돌아오는 14㎞ 길이의 원점회귀 구간이다. 소요시간은 4시간30분이다.

2코스는 덕유산 기슭에 있는 모리재가 제외된 수승대~동계 고택~강선대~갈계숲~행기숲~용암정~수승대를 걷는 9.9㎞ 구간으로 2시간40분이 소요된다.

1, 2코스 모두 대부분 길이 기존 농로와 차도를 이용해 조성돼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문화유산 여행길(이하 여행길)의 시작점인 수승대의 원래 명칭은 수송대다.

이곳은 삼국 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 국력이 쇠약해진 백제가 신라로 가던 사신을 환송하던 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고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했다.

현재의 이름은 1543년 퇴계 이황 선생이 영승마을에 머물다 떠나면서 그 내력을 듣고 이곳에 들러 '아름다운 경치에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수승대로 이름을 고치라는 시 한 수를 짓고 바위에 '수승대'라고 새기면서 바뀌었다고 한다. 출발지인 수승대는 볼거리가 많은 만큼 여행길 탐방을 마무리하고 둘러보는 것이 좋다.

■충절의 기상을 배우다

	절개와 충절이 높은 선비로 평가받고 있는 동계 정온 선생의 고택.

구간 곳곳에 이정표가 있으나 구간별 거리가 너무 멀어 다음 구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수승대에서 이정표를 따라 1㎞ 포장된 농로를 따라가면 금원산 아래 나지막한 산 앞에 옛 고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보인다. 이 마을이 동계 정온 고택이 있는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이다. 동계 정온(1569~1641) 선생은 병자호란 때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며 할복자살을 기도하는 등 절개와 충절이 높은 선비로 평가받고 있다.

이 집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며 이웃한 고택들을 양쪽으로 거느리는 듯 당당히 서 있다. 솟을대문 위 붉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쓰인 '정려문(旌閭文)'이 볼 만하다. '文簡公桐溪鄭蘊之門'(문간공동계정온지문)이라 쓰여 있다. 왕조시대에 충신, 효자, 열녀의 풍속을 널리 알리고 본받고자 나라에서 내리던 표창이다.

구간을 따라 농사철이 맞은 농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주변은 온통 꽃향기로 가득 차 있다. 또 지난 가을 심었던 청보리는 푸릇푸릇한 신선함을 뽐낸다.

■신선들을 만나다

동계 고택에서 3.8㎞가량의 2차선 도로를 걸어가다 좌측의 농로로 오르면 강선대에 도착한다. 황강의 발원지인 덕유산 삿갓골샘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러내리면서 곳곳에 절경을 빚어내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강선대는 경치가 좋아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거창의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바위와 벼랑을 끼고 돌아 흐르는 물길 아래 누운 반석은 물길에 파도문을 이룬다. 경치는 마치 채석강을 연상케 하는 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강선대 앞으로 계곡물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바람과 허브향이 함께 어우러진 차 한잔의 추억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강선대에서 산속으로 난 언덕길을 더 올라가면 동계 선생을 모신 사당인 모리재(某里齋)가 나온다. 모리재를 다녀온 후 1㎞가량 이정표를 따라가면 매우 단단한 화강석으로 상판에 칠성(七星)이 그려져 있는 농산리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수승대 방향의 2차선 국도를 따라 내려오면 좌측에 만월당과 갈계숲이 있다. 만월당(滿月堂)은 만월당 정종주(1573~1653) 선생을 기리기 위해 1666년에 건립한 건물로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학술 가치가 높다.

2만 ㎡의 갈계숲은 수령 200∼300년의 느릅나무와 소나무, 물오리나무, 느티나무로 이뤄져 있다. 신 씨와 함께 거창의 대표적 성씨인 거창 임 씨 선조들이 건립한 정자들이 있다.

이어 백제의 무왕(서동)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꾀어 백제로 갈 때 이곳의 경치가 너무 좋아 며칠을 머물러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행기숲과 용암정을 거쳐 수승대로 되돌아온다. 명승 제88호인 용암정은 1801년(순조1)에 용암 임석형 선생이 위천 강변의 바위 위에 지은 정자로 전통적인 건축경관과 역사·문화적 환경이 조화를 이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

김인수 기자 is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