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농단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근혜(65) 전 대통령이 23일 검찰이 기소한 18가지 범죄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은 40년 지기이자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61·구속기소) 씨와 법정에서 만났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박근혜(왼쪽)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590억 원대의 뇌물 혐의에 대한 첫 공판에서 이경재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최순실 씨와 함께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 취재단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이날 박 전 대통령과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롯데그룹 신동빈(62) 회장의 첫 정식 재판을 열었다.

수의 대신 남색 정장을 입은 박 전 대통령은 왼쪽 가슴엔 수용번호 503이 적힌 배지를 달았다. 박 전 대통령과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은 최 씨는 "40여 년 지켜본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 나오게 한 제가 죄인"이라고 울먹였다. 박 전 대통령은 정면만 응시했다.

검찰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개인적 친분을 맺어온 최 씨에게 국가 기밀을 전달해 국정에 개입하게 하는 한편 권력을 남용해 개인이나 기업의 이권에 개입해 사익을 추구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공소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유영하 변호사는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과 대기업에 출연금을 강요했다는 (검찰의) 기본 전제가 틀렸다. 검찰이 추론과 상상에 의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장이 "피고인도 부인하는 입장이냐"고 묻자 "네. 변호인 입장과 같습니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 측에 70억 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신 회장 측도 "공소사실은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의문"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피고인, 직업이 어떻게 됩니까"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일어서서 "무직입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이는 재판 시작 전 '인정신문' 절차다. 송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