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북다리·별학도·노루대 등
- 고전 속 지명들 고스란히 남아
- 이야기 되짚어가며 16㎞ 걷기

- 비토섬 끝자락에 다다르면
- 토끼가 달에 올라갔다는 월등도
- 썰물때 자동차로 건널 수 있어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섬은 토끼와 거북이의 설화인 별주부전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이 별주부전의 무대라고 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관광상품화를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니라 지형이나 지명이 별주부전에 나오는 것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남해 바다 용왕의 사자(使者)인 거북이가 토끼에게 높은 벼슬을 주겠다며 용궁으로 유인하자 토끼가 뒤늦게 병든 용왕을 위해 희생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름달의 기운을 받기 위해 간을 나뭇가지에 걸어 두었으니 가지고 오겠다"고 속이고는 달아났다는 이야기다. 이곳 비토에는 별주부전에 나오는 그 지명들이 고스란히 내려온다. 토끼가 달에 올라갔다는 월등도(月登島)와 토끼섬, 거북이섬이 있고 솔섬, 토까이(토끼) 굼터, 별학도 등이다.

	사천시 곤양향교가 주관하는 '사천선비문화관광길' 체험단 회원들이 썰물에 맞춰 토끼와 거북이의 설화가 있는 월등도에서 거북섬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완용 기자

■걷기의 시작

사천시는 이 같은 이야기가 담긴 비토섬을 중심으로 '토끼와 거북이길'을 조성했다. 사천대교 입구의 휴게소에서 서포면 소재지를 거쳐 비토연륙교~솔섬~거북교~토끼로~낙지포~용궁로~월등도에 이르는 16㎞의 길이다.

남해고속도로 사천IC에서 사천읍을 거쳐 사천대교를 건너면 왼쪽에 출발점인 대교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 서포면사무소까지는 2차선의 도로여서 걷기는 위험하다. 면사무소에서 1㎞가량을 더 지나면 도착하는 비토연륙교에서부터 걷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연륙교는 1990년대 초까지만해도 섬이었던 비토섬을 하루아침에 육지로 바꿔놓은 교랑으로, 당시 사천군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경축할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비토섬 초입

	하늘에서 본 비토섬 전경. 사천시 제공

연륙교를 지나면 솔섬이다. 송도(松島)라고 표기하는 이 섬은 육지와 비토섬 중간에 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조개와 굴(석화)이 지천이었고 주변 환경이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어촌이었으나 지금은 펜션과 오토캠핑장이 들어선 휴양지로 탈바꿈했다.솔섬을 지나면 비토섬까지 200여 m를 연결하는 거북교가 나온다. 본래 이곳은 바다였으나 작은 파도에 모래나 조개, 굴껍질 등이 밀려와 섬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섬 사이를 연결하는 둑 형태의 길이 됐다. 그러다가 4~5년 전에는 양쪽 바다를 연결하는 해수 유통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면서 지금의 거북교를 만들었다. 한쪽으로는 갯벌을 관찰할 수 있는 해양덱도 설치돼 있어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거북교를 지나 100여 m를 지나면 삼거리다. 왼쪽의 2차선 도로는 지방도 1005호인 '토끼로'이고 오른쪽 작은길은 '거북길'이다. 2차선 이상의 도로는 '로'로, 그 이하의 작은길은 '길'로 표기토록한 규정때문에 '토끼로'와 '거북길'이라는 이름 끝자가 달리 붙여졌단다.

토끼로는 비토섬의 메인도로다. 초입인 장대먼당(長竹峯)을 오르면 비토섬 안쪽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천황봉을 병풍삼아 섬의 좌우측으로 작은 산들이 이어져 있어 마을이 새 둥지처럼 따뜻하게 느껴진다. 가까이는 한가롭게 보이는 집들과 들판을 둘러보고 멀리는 남해 바다와 작은 섬들을 바라보며 느리게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2차선의 지방도지만 지나가는 차량이 거의 없고 통행하는 경운기나 농기계조차 드문 길이다.

낙지포에 이르러 왼쪽의 2차선 길로 곧장가면 한일횟집이 있는 작은 포구를 만난다. 굴을 양식하는 걸대식 양식장이 나타나고 어선들이 줄지어 지나다니기도 한다. 300~400m를 더 지나면 토끼와 거북이 조형물이 있는 작은 소공원이 있는데 이곳이 월등도 초입이다.

■별주부전 설화의 정점

	월등도 입구에 세워져있는 거북을 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토끼 모형.

월등도는 비토섬의 끝자락에 있는 또 다른 작은 섬이다. 4가구가 살고 있는 유인도인데도 아직까지 교량이 없어 하루 두차례 썰물 때 자동차로 건널 수 있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밀물이면 배를 이용해야 왕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물때를 모르고 들어갔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200여 m의 연결로는 바다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체험장이기도 하다. 요즘 해조류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고둥이나 작은 게들이 널려있다. 주변의 갯벌을 파면 바지락도 제법 나오고 굴도 캘 수 있다. 월등도 좌우의 남해 바다쪽에는 토끼를 닮은 토끼섬과 거북이를 판박이한 거북섬이 붙어있어 별주부전의 무대임을 실감할 수 있다.

월등도를 돌아나와 낙지포 삼거리를 조금 못미친 곳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호젓한 해안길이 나온다. 언덕 아래 해안도로변에는 다닥다닥 비닐하우스로 만든 굴 박신장이 겨울에는 북새통을 이룬다. 굴을 까는 아낙들의 손놀림도 바쁘고 굴구이를 찾는 관광객들이 밀려 길을 통과하기 힘들 정도다. 굴 박신장이 끝나는 곳이 비토섬 물양장이다. 어선들이 한가로이 정박한 여유로운 모습도 볼 수 있지만 군데군데 횟집도 보이고 전망 좋은 곳에는 펜션이나 찻집도 자리하고 있다.

이 코스는 석양을 보는 재미가 최고다. 안개라도 끼거나 흐린 날이면 몰라도 하늘과 바다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저녁노을을 제대로 감상했다면 반드시 다시 한번 걷고싶은 길이다. 거북길의 끝은 걷는 길의 초입인 거북교로 이어져 있어 비토섬을 한바퀴 돌아나온 셈이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