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인상된 최저임금 소급분을 받았다가 공금횡령으로 고발당하고 해고 통보까지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일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8일 오전 11시 30분 부산진구 A아파트 관리실에서 이모(77) 씨가 숨져 있는 것을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A아파트 경비원이던 이 씨는 지난 7일 입주자 대표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앞서 이 씨는 지난 3월 아파트 공금 횡령 혐의로 전 입주자 대표에게 고발당했다. 공금 통장은 보통 입주자 대표 총무가 관리한다. A아파트의 경우 관리실 경비 지출이 잦은 탓에 편의상 이 씨가 통장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씨는 지난 1일 경찰 조사에서 "2014년과 2015년 초반 받은 월급에 최저임금 인상분이 반영되지 않아 미지급분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술 내용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1월 11일 전 입주자 대표의 집 현관문에 임금 미지급분을 알리는 통지문을 붙였다. 입주자 대표를 만나 "통지문을 봤나"고 묻자 전 입주자 대표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 게 이 씨의 진술이었다. 이 씨는 올해 1월 13일과 2월 1일 2차례에 걸쳐 393만 원을 공금 통장에서 인출했다.

숨진 이 씨의 상의 주머니에서는 해고 통보장과 무고 고소장을 겸한 유서가 발견됐다.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제목의 고소장에는 이 씨가 더 받아야 하는 임금 정산 내역이 포함돼 있었다.

이 씨보다 앞선 3월 16일 고발인 조사를 받은 전 입주자 대표는 "통지를 받은 적이 없으며 돈을 인출하라고 동의하지도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 1월 입주자 대표가 바뀌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새로 선출된 입주자 대표는 회계정리를 하다가 공금이 비는 것을 발견하고 전 입주자 대표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전 입주자 대표는 이 씨가 무단으로 돈을 인출했다며 고발한 것이다. 이 씨도 부산고용노동청에 최저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6일에는 이 씨와 전·현직 입주자 대표 3자가 모여 "경찰과 노동청에 제기한 고발과 진정은 취하한다. 인출한 돈은 받고 차용증은 회수하기로 쌍방 합의한다"라는 내용의 합의서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 씨의 정확한 사인과 이 씨가 남긴 차용증의 의미는 무엇인지 조사 중이다. 정철욱 기자 jc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