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의 시인 네루다
- 책을 덮고 거리로 나가
- 사람들과 함께 싸우며
- 독재 아래서 시를 썼고
- 민중은 벽에 그림을 그렸다

- 모두가 함께하는 삶은
-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 역사적 가르침 잊지말자며…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올해 3월 11일까지 134일 대장정으로 촛불집회는 끝이 나고, 제18대 대통령이 탄핵되고,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촛불집회에서 목이 터지도록 외쳤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다시 거리에서 떼창하지 않도록 이번 선거에는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지 말자.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 산타 마리아 거리에 이르는 골목에 그려진 그라피티.

'내가 책을 덮을 때/나는 삶을 연다./(…)/책이여, 나를 놓아다오./나는 여러 권의 책으로 뒤덮이지 않으련다./(…)/신화에서 자유롭게 : 책들은 서가로 보내자./나는 거리로 나가련다./나는 삶 자체에서/삶을 배웠고,/단 한 번의 키스에서 사랑을 배웠으며/사람들과 함께 싸우고/그들의 말을 내 노래 속에서 말하며/그들과 더불어 산 것 말고는/누구한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었다.'(정현종 역, 파블로 네루다의 시 '책에 부치는 노래'에서).

■ "나는 삶 자체에서 삶을 배웠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 산타 마리아 거리에 이르는 골목에 그려진 그라피티.

책을 덮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가르침을 받으려 파블로 네루다(1904년 7월 12일~1973년 9월 23일)의 집으로 가자. 칠레의 민중시인으로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집으로 가자. 이제는 박물관으로 바뀐 그의 옛 집에서 역사의 가르침을 되새기자.

스페인 내전을 겪은 다음 해 1937년 칠레로 귀국하면서 그는 이슬라 네그라에 정착하여 좌우 이념의 대결이 국가와 민족을 황폐화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려고 서사시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을 창작한다.

이 작품에서처럼 어떤 억압에도 민중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견딘 그의 인간됨을 널리 알리려고 안토니오 스카르메타(1940년 11월 7일 생)는 이슬라 네그라의 집을 배경으로 하여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원제 '불타는 인내 Ardiente Paciencia')라는 제목으로 연극이나 라디오 방송극, 영화(1982년), 소설(1985년)을 창작한다.

1949년 '천국의 계단'이라는 뜻을 가진 해변 도시 발파라이소에서 두 번째 집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를 짓고자 하지만, 그는 정치적 폭력을 피해 2월 24일 아르헨티나로 탈출한다. 그는 '라 세바스티아나'를 미완성인 채로 그대로 두었다가 1961년에야 완성한다.

■ "나는 사랑의 시를 썼다"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민중이 받은 고통을 치유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담은 조형물.

1952년 8월 13일 지명수배가 해제되어 다시 귀국한 다음 해, 그는 연인 마틸데 우루티아(Matilde Urrutia)와 사적인 생활을 위한 산티아고 산크리스토발 언덕에 집을 짓고자 한다. 로드리게스 아리아스(스페인 건축가·1902년~1987년)가 건축한 집을 그는 '라 챠스코나(La Chascona)'로 명명한다. '머리털을 산발한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은 그가 마틸데의 숱이 많고 엉클어진 머리 모양에서 붙인 것이다. 둘이서만 함께 지낸 '라 챠스코나(La Chascona)'는 그가 자서전에서 '내가 쓴 시를 합하면 7000쪽쯤 될 것이다. 그런데 정치를 주제로 쓴 것은 4쪽도 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사랑을 더 자주 노래한다"라고 말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인근 산타마리아 병원에서 최후를 맞이한 그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사랑으로 가득 찬 그 집에 잠시 머물다가 산크리스토발 언덕을 올라갔을 것이다. 1536년 원주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스페인 정복자가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 그는 칠레의 수호성인 산티아고(성인 야고브의 스페인식 이름)에게 조국과 민중에 대한 사랑의 기도를 드리고는 동쪽(안데스의 말뜻)으로 훌훌 날아가 산맥 너머로 사라졌을 것이다.

■ 그래, 나부터 선택의 길을 가자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그를 죽음으로 내몬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Ugarte)의 군사독재 기간(1973년 9월 11일~1997년 3월 10일) 동안,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부터 그의 집을 지나서 산타 마리아 거리에 이르는 골목에는 그라피티들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 언덕에는 191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에서 칠레에 선물한 성모 마리아상(높이 14m)과 작은 성당이 있다. 그 동상부터 언덕 입구까지 내려오는 산책로에는 '나는 유치원생이다' '모든 것의 완성을 위하여' '아버지 하느님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등등 여러 표현과 함께 그라피티가 그려진 십자가상들이 늘어서 있다. 예수의 고난과 인간의 구원을 뜻하는 십자가에 그것이 상징하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그라피티를 그린 것은 군사독재 기간 민중이 받은 고통을 구원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와 구원받지 못한 절박한 절망감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언덕을 내려서서 산타 마리아 거리에 이르는 골목마다 그려진 그라피티는 때로는 낙서와 함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산크리스토발 언덕 수난의 그라피티에서 뒷골목 다양한 그라피티에 이르기까지 네루다와 그의 후손들은 더불어 사는 삶을 노래한다. 삶은 책 속에 있지 않고 사람과 함께 싸우면서 더불어 사는 것에 있다. 그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은 우리 모두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다, 먼저 나부터 선택의 길을 시작하자.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