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선 후보마다 전담 배치

"난상토론에서 두 후보가 동시에 말할 때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죠."

'민주주의 축제' 대통령 선거에서 청각 장애인이 소외당하고 있다.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TV 토론회의 경우 1명의 통역사가 동시에 여러 후보의 말을 통역하다 보니 정확한 의미 전달이 안 된다는 지적이 높다.

현재까지 5·9대통령 선거 후보 TV 토론은 지난 13·19일과 23일 세 차례 열렸다. 방송사들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화 방송도 했다. 문제는 토론회의 내용을 수화로 완벽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5명의 후보와 1명의 사회자가 하는 말을 1명의 통역사가 전달하기 어려운 구조 탓이다.

청각 장애인 A(여·41) 씨는 "후보들이 설전이 벌어질 때는 통역사가 아무리 빨리 전달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후보나 통역사의 표정을 보고 어림짐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각 장애인 B(여·32) 씨도 "통역사가 어느 후보가 말하는지 소개하고 통역하는 게 아니어서 이해가 더 힘들다"면서 "화면은 정신 없이 넘어가는데 통역사는 수화하기에 급급해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산청각장애인인권연구소 박범서 소장도 "수화로 여러 후보의 토론을 전달하는 것과 뉴스를 전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형식적으로 통역사 1명을 배치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막 방송도 한계가 있다. 선천적인 농아인 중 한글 교육을 못 받은 경우가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농아인 중 한글을 잘 읽지 못하는 40대 이상이 많은데 이런 사람이 정치적 정보를 얻으려면 수화 통역사의 추가 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는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한 비영리 공영기구가 통역사 3명을 동원해 청각 장애인을 위한 화면을 페이스북을 통해 중계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방송에서 2명의 통역사가 각각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전담하고 나머지 1명은 사회자의 말을 통역했다. 후보마다 개별적으로 자신의 전담 통역사를 배치해 유권자들의 편의를 돕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후보 TV토론회에 수화 통역사 배치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공직선거법 82조2 12항에는 '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대담·토론회를 개최할 때에는 청각 장애 선거인을 위해 자막방송 또는 수화 통역을 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한편 부산청각장애인인권연구소에 따르면 전국의 청각 장애인 28만 명 가운데 부산에 1만53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