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동강 3대 나루 '감동진' 상호로
- 옛 구포銀 터에 심부름센터 개업
- 인숙이 찾아나선 상주댁과 조우
- 국시·과일행상의 명성에 호기심

- 차·낚시꾼들로 북적였던 다리
- 2008년 철거되면서 추억으로
- 범선 돛대 형상 도시철도 역사
- 복원 진행 구포나루 정박할 듯
- 낡은 여인숙 투숙객 주소보니
- 번화했던 구포의 거리 떠올라

옛 구포다리가 있었던 자리.

"안녕하십니까. 감동을 주는 감동진 심부름센텁니다."

진 사장은 경부선 구포역 앞에서 직접 홍보전단을 돌렸다. 감동진이라는 상호는 바로 떠올랐다. 옛날에는 경부선 구포역까지 강물이 넘실거렸고, 현재 구포1치안센터 자리가 감동진 터였다고 한다. 감동진은 상주의 낙동진, 합천의 밤마리 나루와 함께 낙동강의 3대 나루였다. 감동진은 한양으로 향하는 수백 척의 나룻배와 상인들이 드나들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감동진 심부름센터는 사람의 뒤를 캐는 일은 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추억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전문으로 한다. 하지만 개업하고 한 달이 지났는데도 의뢰 한 건 들어오지 않았다. 진 사장은 맥이 빠졌다. 경부선 구포역에 내린 사람들은 곧바로 버스로 환승하거나 도시철도 구포역으로 건너갔다.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이 개통되고 구포역에 KTX 운행이 줄면서 승객이 대폭 감소했다. 때문에 주변 상권도 위축됐다. 부동산소장은 사무실을 소개하면서 이 터가 보통 유서 깊은 곳이 아니라고 했다.

과거 구포다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전시물(위)과 도시철도 구포역 주변 모습. 1933년 3월 준공된 구포다리(대저~구포)는 낙동강 최초의 교량이자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박수정 사진작가

"사장님, 이 건물이 말이야, 예전에 구포은행 자립니더. 구포은행은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지방은행이에요. 원래 구포저축주식회사였는데, 일제가 조선 기업들을 마음대로 부려 먹을라고 설립허가를 다시 받으라 카니까, 부산 경남 지주들하고 구포 상인들이 뭉쳐서 1912년에 구포은행이 탄생했다 아입니까. 나중에 경남은행으로 바뀌고 본점도 옮겨갔지만, 나라 없을 때 큰 도움이 된 은행입니더."

큰 욕심은 부리지 않았지만 한 달째 손님이 없다 보니 진 사장은 부동산소장의 말까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구포역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구포역에 취재 나온 작가라는데, 어제 전단을 보고는 뭔가 의뢰를 할 것처럼 진 사장에게 다가와 감동진이라는 상호를 사용하게 된 까닭만 묻고 가버렸다. 진 사장은 구포우체국 옆 중국집에 점심시간 때를 피해 내려갔다.

"우리 인숙이 봤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한 할머니가 대뜸 주인 아줌마에게 인숙이를 찾았다.

"아이고, 할매예 오랜만이네예. 통 안 나오시더만은 잘 계십니꺼?"

"내는 괘안코, 우리 인숙이 봤나? 어제 우리 인숙이가 집에 안 들어왔다."

"글쎄예, 못 봤는데예. 할매예, 그렇게 무작정 돌아다니지 마시고, 여기 진 사장한테 한 번 부탁해 보이소. 요 앞에서 심부름센터 하는데, 그런 일은 귀신같이 합니더."

진 사장은 주인 아줌마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애초 사람 찾는 일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터라 정중히 거절했다.

구포역 인근 둑에 설치된 감동진 나루터 안내판.

"할머니, 치안센터로 가보세요. 저는 추억을 찾아주는…."

"치아라 마! 내가 찾을란다."

할머니는 가게 문을 열고 나갔다. 진 사장은 괜히 뻘쭘했다.

"누구신데요?"

"난리 때 상주에서 뱃길로 피난 와서 그 질로 구포에 눌러앉으셨지. 예전에 구포역 앞에서 포장마차를 하셨는데, 구포역 이용했던 사람들은 다 알지. 상주댁이 말은 국시 안 먹고 기차 타면 가는 내내 허전하다 안 카나. 고명이라고 특별한 것도 없고 신 김치 정구지 이런 거 쪼매 넣고 양념장에 멸치육수 부어가꼬 대충 만든 것 같은데, 그거 묵은 사람은 무슨 상사병 걸린 것처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카더라. 구포역 광장 정비하면서 포장마차 관두시고 지금은 땡땡이 마을에 계신다 카던데."

구포국수 체험관.

진 사장이 식당에서 나와 보니 상주댁이 만세거리 주변 가게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뭘 보노? 어깨가 축 늘어진 거 보이 진 사장 오늘도 마시를 못했는가베?"

과일가게 아저씨였다.

"아…네, 아직요. 아저씨, 만세길 쪽으로 가는 저 할머니 아십니까?"

"누구? 아~ 상주댁? 당연히 알제. 구포의 산증인 아이가. 여기서 반백년을 사신 분인데. 저기 문화예술플랫폼에 한 번 가봐라. 1층 북구 근대역사관에 저 할매 나온 사진 수두룩하데이. 저 할매 젊었을 때 억수로 이뻤다아이가. 처녀 때는 구포둑에서 딸기도 팔고 배도 팔았는데, 그때 밭에서 한 리어카 띠 오면 노을로 낙동강이 벌겋게 물들기 전에 떨이한다 안 카나. 옛날에는 구포둑에 사람들이 엄청났거든. 미스코리아 같은 얼굴로 돌아댕기면서 내 딸 사이소∼, 내 배 사이소∼ 해봐라. 누가 안 사고 배기겠노?"

구포역 앞 골목.

"구포에 그리 사람이 많았습니까?"

"말도 마라. 옛날에는 구포둑 와서 데이트했다아이가. 딸아한테 잘 보일라카면 구포나루에서 배 타고 대동으로 건너간다아이가. 밭주인한테 한 소쿠리 시키면 바로 따주는데, 그 싱싱한 딸기 노나 먹으면서 구포 쪽 경치 보고 이바구해봐라, 안 넘어가는 딸아가 있나. 저녁에는 사상공단 사람들이 구포둑에 몰려오는데, 장어구이에 소주 한 잔 걸쳐야 기운 내고 내일 또 일 나간다 안 카나. 옛날에는 대단했지, 구포가."

"근데, 상주댁이 찾는 인숙이는 누군데요?"

"인숙이? 글쎄."

진 사장은 호기심이 일었다. 상주댁의 일은 불륜관계를 파헤치는 것과는 무관한 듯 보였다. 게다가 상주댁의 명성을 듣고 보니 인숙이만 찾아낸다면 금세 소문이 퍼져 의뢰가 많이 들어올 것 같았다. 진 사장은 상주댁을 찾으러 만세길 쪽으로 바삐 갔다. 가는 길에 무너질 것 같은 적산가옥들을 보니 일제 강점기 이곳이 시가지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길가의 태극기 물결과 만세운동을 펼쳤던 모습을 담은 벽화만 시가지였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철길 건너편에도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 사장은 구포역 쪽으로 다시 돌아왔다. 구포국수 체험관 1층에서 취재 작가가 국수를 먹고 있었다.

북구 근대역사관 내부 모습. 박수정 사진작가

"구포역 취재는 잘 되어 갑니까?"

"그럭저럭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혹시, 조금 전에 할머니 한 분 못 봤습니까? 인숙이 찾는다고 이 앞에 지나가셨는데…."

"상주댁요? 인숙이 데리러 낙동장교에 갔을 겁니다."

"어, 인숙이를 압니까?"

"인숙이도 모르고 구포역 앞에서 영업합니까!"

진 사장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여기서 영업한 지 얼마 되질 않아서요. 그런데 낙동장교라는 다리가 있습니까? 그런 이름은 못 들어본 것 같은데…."

"도시철도 구포역으로 가보세요. 잘 찾아보면 보일 겁니다."

진 사장은 육교를 건너 도시철도 구포역으로 갔다. 전망대와 감동진 옛터에도 가보았지만,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진 사장은 구포역사 아래로 내려가 갈맷길을 따라 구포대교 방향으로 걸었다. '낙동강의 물목 구포다리 옛 모습'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1933년 3월 7일, 낙동강 최초의 교량이자 대저와 구포를 잇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길었던 다리, 그래서 붙은 명칭이 낙동장교! 1060m, 구포역 일대 옛 지번이 1060번지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당시 부산에서 경남 내륙으로 통하는 유일한 도로, 다리 밑에서 멱을 감고, 조개를 잡던 사람들, 다리 위에는 차와 낚시꾼들로 항상 북적였던 구포다리는 태풍에 다리 상판이 붕괴되면서 2008년 철거되었다. 구포와 근·현대를 함께 한 75년 된 다리는 현재 완전히 사라졌다. 강변에 액자 몇 점만 그 흔적으로 남아 있다. 1060번지라는 지번 주소 또한 도로명 주소로 바뀌어 이제 구포다리의 추억을 더듬기란 쉽지 않다. 구포대교 아래의 나룻배에 탄 노인이 강변에 밀려온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었다.

"어르신, 돈 드릴 테니까 배 좀 태워 주세요."

노인은 진 사장을 쳐다보다가 배에 타라는 시늉을 했다.

"젊은 사람이 너무 돈 밝히면 쓰나! 옛날에는 한 해 동안 타고 댕기고 추수 때 나락이나 보리 같은 거 걷으러 댕기고 그랬는데…."

노인은 구포어촌계장이라고 밝혔다. 쓰레기를 수거한 노인은 나룻배를 몰아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강에서 범방산을 보니 왜 북구에 거북 구(龜)가 붙은 지명이 많은 지 절로 이해됐다. 구포역사 아래에 있었던 구포나루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었다. 노인은 다행히 구포나루 복원 사업은 진행되고 있다며 안도했다. 범선의 돛대 형상을 한 도시철도 구포역사는 금세라도 낙동강에 뱃머리를 내릴 기세였다.

"어르신 혹시 상주댁이라고 아십니까?"

"알다마다. 조금 전에 인숙이 데꼬 들어갔다아이가. 인숙이 그아가 죽을 때가 다 됐는가 요즘 부쩍 나루터에 나와 가지고 상류 쪽으로 고개를 빼고 눕어 있다가 안 가나. 수구초심인기라. 인숙이가 상주댁하고 오래 살더만 상주댁 속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기지."

"…, 인숙이가 사람이 아닙니까?"

"뭔 소리 하노? 십 몇 년 전에 구포역 앞 여인숙에 장기 투숙하던 사람이 키우던 강아지였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사라지가 상주댁하고 산다아이가. 그래서 인숙이라 지었다아이가. 남편 요절하고 혈혈단신으로 지냈는데, 인숙이가 상주댁 포장마차에 가서 밥도 얻어 묵고 하다가 정이 들었다아이가. 상주댁한테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지."

노인은 선착장에 배를 정박했다. 진 사장은 구포둑으로 내려갔다. 경부선 구포역 앞 골목 어귀에 여인숙의 낡은 아크릴 간판에 희미하게 불이 들어왔다. 진 사장은 여인숙 대문 앞에 섰다. 한쪽 문은 녹이 슨 채 기울어져 있었다. 진 사장은 서성이다 여인숙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좁은 복도 양편으로 다닥다닥 방이 붙어 있었다. 닫힌 문 아래에 신발이 없는 거로 보아 투숙객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안내실 팻말이 붙은 방안에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담요를 덮고 잠들어 있었다. 할머니 머리맡에 낡은 공책이 펼쳐져 있었다. 공책에는 오래전 숙박한 사람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전국에서 찾아온 투숙객들의 주소를 보니 번화했던 구포의 거리가 연상됐다. 진 사장은 여인숙을 나와 불 꺼진 홍등가를 거쳐 기찻길 옆 땡땡이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여인숙 앞 포장마차 두 대에 불이 켜져 있었다.

"어이? 그래, 낙동장교는 찾았습니까?"

취재작가였다. 장어구이에 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진 사장은 취재작가 옆에 앉아 구포역 취재담을 들었다. 얼큰하게 술에 취한 진 사장의 목소리가 구포역 광장까지 들렸다. "개업 기념으로 한 달 동안 의뢰비 공짜다! 공짜!"

강성민 소설가

※공동기획: 동서대,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