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정부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 오페라하우스를 재건하고
- 삭막한 콘크리트의 시드니항을
- 아름다운 곶으로 재창조했다
- 토착원주민 문화와 시민의 삶
- 예술의 로망이 어우러진
- 친수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오래된 도시'에 가면 여행자들은 역사 인물이나 오래된 사건, 유서 깊은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동상이나 조각 그리고 광장이 있는 구시가지를 만난다. 이어 다른 도시와 차별되는, 그 자체의 독특성과 위용을 거만하게 자랑하는 공연장과 전시장 등 공공적 건축물이 많은 신시가지도 만난다.

구시가지이든 신시가지이든 여행자들은 우연히 마주친 도시의 풍경에서 그 도시의 이미지를 느낀다. 미로 같은 좁은 골목, 그 길 쪽으로 난 베란다에 화분이 놓인 집, 그라피티가 그려진 담벼락, 바람결 따라 어우러지는 꽃, 빈 술병, 찌그러진 깡통, 이리저리 널린 지난 밤의 흔적이 남은 거리, 새들의 잔여물을 머리에 인 동상이 내려다보는 광장 등이 그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이다.

그 이미지들은 여행자들에게 때로는 확연히 때로는 슬며시 다가와 도시의 상징으로 인식된다. 그 도시의 이미지이자 상징으로 다가오는 랜드마크를 여행의 이정표로 삼고는 여행자들은 마음속 지도를 그리게 된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전경. 주위의 문화공간을 연결하는 중요한 친수공간 구실을 한다. 국제신문 DB

■전설이 된 경이로운 건축물

여행을 가지 않아도 누구라도 쉽게 마음속으로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친근하게 알려진 곳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도 그런 곳이다. 시드니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오래된 역사의 도시가 아니기에, 이 도시를 찾는 여행자는 오페라 하우스의 자태와 위용에 빨려든다. 오페라 하우스라는 랜드마크가 워낙에 유명하기에 그렇기도 할 것이다.

시드니 바랑가루 보존지에 있는 원주민 벽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작가 피터 케리는 식민지 도시에서 오세아니아 최대 도시로 발전한 시드니에 17년 만에 되돌아와 이 도시에 관해 2001년 펴낸 책에서 이렇게 썼다. "해변과 레스토랑과 요트와 시끌벅적한 금요일 밤이 있는 도시…생활의 여유와 경쾌함 혹은 항상 휴가 중 같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김병화 역, '휴가지의 진실'에서)

오페라하우스는 백인들의 방탕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원주민의 삶을 지우고, '항상 휴가 중'인 상태로 문화예술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너무나 좋다. 오페라하우스는 18년의 공사 기간과 20배로 증액된 공사비 등에 얽힌 이야기를 수없이 만들어내면서 "세상을 바꾼 건축"(클라우스 라이홀트 외) "우리 세계의 70가지 경이로운 건축물"(닐 파킨) "20세기 건축"(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세계 신 7대 불가사의' 후보에 오르면서 신화가 되어버린 곳이다.

■오페라 하우스엔 오페라만 있을까

울룰루 걷기 프로그램 도중 만나는 거리공연.

그 신화는 2006년 오페라 하우스 CEO 노먼 길레스피의 신문 인터뷰에서 절정에 달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호주 시드니를 찾는 첫 번째 이유는 오페라하우스를 보기 위해서이다" "오페라 하우스가 없었다면 시드니가 유명해질 수 없었고, 세계 사람들의 발길도 뜸했을 것"이라고 웅변한다. 그의 자리가 2006년 루이스 헤론에게 넘어가면서 그 신화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로 절정을 이룬다.

등재 사유의 핵심은 "오페라하우스는 바닷가의 뛰어난 경관을 배경으로 세워진 훌륭한 도시적 조형물, 세계적 수준의 공연예술 센터로서의 기능"에 있다.

'오페라하우스 투어'에 참여하면 가이드는 메인 홀의 2층 객석에서 무대 공연이 제대로 안 보이는 좌석이 있는 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설명한다. 그녀는 또한 저명한 대중가수들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일반인들이 즐겨 찾는 공연장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오페라 하우스 투어를 하는 관광객보다도,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보다도 훨씬 많은 시민과 외지인이 그 바다 경관을 즐긴다는 사실은 좀체 말하지 않는다.

■홀로서기 멈추고 연결된 공간으로

오페라 하우스와 연계되는 울룰루 걷기 구간. 해변 식당가로 유명한 지역이다.

폴 키팅 수상(재임 1991~1996)은 1994년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최초의 연방문화정책을 담은 문건인 '창의적 국가'를 발표한다.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예산을 들여 호주의 문화와 예술을 일신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여기에 오페라 하우스를 재건하고 시드니의 콘크리트 항구를 외지인 이주가 시작되기 이전의 해안 경관을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곶으로 재창조하는 계획이 포함된다.

그 프로젝트는 이어져 2006년 시민 공모전을 통해 그 이름을 '바랑가루'로 정한다. 바랑가루는 유럽인이 시드니에 최초로 정착했을 당시 원주민과 유럽인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가졌던 토착 원주민 그룹의 여성 이름이다. 그 프로젝트로 해안산책로가 만들어지면서, 오페라 하우스는 친수공간으로 거듭난다. 바닷가 경관을 배경으로 오페라하우스는 바랑가루 보존지와 왕립 열대 식물원을 껴안고는 친수공간의 중심으로 자리한다. 더구나 해안산책로 걷기를 '울룰루 걷기'라고 칭하면서 오페라 하우스는 드디어 공연 공간으로만 홀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고 연결된 공간이 된다.

달링 하버에서 이어지는 해안 친수공간의 중심지로서 오페라 하우스는 원주민의 역사와 삶을 담은 바랑가루 보존지, 이주민의 생활을 간직한 서클 키, 박물관, 미술관, 극장 등 문화시설들, 아쿠아리움, 크루즈 및 요트 선착장 같은 해양시설 그리고 거리 음식점들, 거리공연 공간을 하나로 묶어 주고 있다.

부산은 북항 오페라 하우스의 조감도까지는 확정했다. 세계 유명 오페라 하우스 가운데 친수공간을 배경으로 한 것은 시드니와 오슬로뿐이다. 친수공간을 단지 배경으로만 삼는다면 어찌될까? 올해 착공한다는 부산 오페라하우스에 대해서 부산 시민 스스로 토론의 장을 만들어보자.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