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 출항하면 바다에서 두 달
- 같은 대양서 일했던 한국 어선
- 환자 생기거나 기관 고장났을때
- 망망대해서 공동체 의식 느껴

- 축적된 경험·지식이 주는 '감'
- 어떤 고기가 얼마나 잡히겠구나
- 바다 밑 읽어내는 혜안 생기기도

- 가장 비싼 어종 알바코 낚은 날
- 혼자 있던 아내가 둘째 순산
-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
- 미안함과 고마움 편지에 담아

조계환(82)은 전남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에서 태어났다. 전남 나주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뒤 목포상업중, 목포공고를 거쳐 1957년 부산 수산대 어로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그는 지독한 선천성 뱃멀리로 인해 실습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뱃멀리와의 사투 끝에 이겨냈다. 배를 탄 후 멀미로 토한 음식물을 뱉어내지 않고 되삼키는 것을 반복했더니 서서히 내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때 뱃멀미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원양어선 선장 대신 교육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실습선 항해사로 첫발

1961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수산대 실습선인 홍양호(100톤급) 항해사가 되면서 원양어선과 인연을 맺었다. 국내에서 해기사 면허 국가고시제도가 1961년 시작됐는데, 이듬해 해기사 면허를 땄다. 수산대 출신 가운데 3호 취득자였다. 이후 원양선사 (주)동화의 제2동화호 항해사로 남태평양 사모아에서 일하다 1964년 제5동화호 선장으로 발탁돼 다시 사모아로 갔다.

"당시 (주)동화가 배(어선) 3척을 신조했어요. 동화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건조한 150톤급 원양 연승어선으로, 현재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서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어선을 건조한 것이죠. 제1동화호 선장은 김재철(동원그룹 회장) 선배님이 맡았습니다."

부산 수산대학교 시절의 조 계환.

사모아에서 돌아온 그는 1966년 12대양호를 이끌고 대서양으로 향했다. 1960년대 중반 우리 원양 연승어업은 본궤도에 진입해 많은 외화를 벌어 들였다. 대형 원양사들은 1970년도부터 어선을 신조해 대양을 누비며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자리잡았다.

"내가 처음 원양어선을 탈 때는 초창기였죠. 그런데 사모아 근무를 마치기 전에 제동산업, 고려원양 등 선사들의 배들이 수십 척으로 늘었어요. 중고선을 도입하는 회사도 증가하면서 1970년대 초반에는 (원양어선이) 최고의 척수를 이뤘습니다. 당시 일본의 퇴역 중고선을 도입한 척수와 우리의 신조 척수가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고선 도입은 단기적으로 자금 회전이 빨랐고, 가격 면에서도 신조보다 저렴했죠. 그래서 자금력이 부족한 신설 회사들은 주로 중고선 도입을 통해 원양어업을 시작했지요."

당시 원양어선들의 어획물은 주로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되었는데, 특히 통조림으로 가공되었던 어종 중 가장 비싸게 거래됐던 어종은 알바코(날개다랑어)와 옐로핀(다랑어의 일종)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대양에서의 광복절

1967년 대서양에서 잡아 올 린 대형 청새치.

그는 조업할 때 '감'으로 어군을 추적했다고 한다. 감과 촉. 그것은 막연한 느낌을 넘어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주는 선물과도 같다. 그런데 조계환은 선장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 1969년 마지막 항차에서 물밑이 잘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감으로 했지요. 참치는 적어도 수심 100미터 정도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잘 안 보입니다. 오래하면 '도사'가 된다고 하잖아요. 전날 조업일지를 분석하다 보면, 오늘은 어디로 얼마나 이동해 어느 방향으로 어떤 수심에 주낙(낚시 도구의 일종)을 깔아야 어떤 고기가 얼마나 올라오겠다는 감이 잡히는 거예요. 어느 때인가 브라질 어장에서 조업을 하다 어황이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장장 20여일의 대이동 끝에 아프리카 가나의 테마항 기지 쪽인 앙골라 연안으로 갔지요. 그곳에서 고기를 잡는데,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물밑이 보이는 겁니다. 오늘 주낙을 깔면 어떤 고기가 몇 톤 정도 올라오겠구나 라는 것이 어렴풋이 머리에 계산이 되는 거예요. 그럼 그것이 거의 맞아요. 그때 나는 '이제부터 선장 자격이 있는데, 몇 회 더 조업하면 만선을 이룰 수 있는데 나의 해상 생활이 이렇게 끝나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척 아쉬웠지요."

원양어선을 타면서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가나 테마항에서의 광복절 기념식이었다.

"그곳에서 8월 15일을 맞았는데, 배 위에서 기념식을 거행했습니다. 태극기를 걸어놓은 뒤 애국가를 부르고 선장인 내가 기념사를 하는데 눈물이 확 나는 거예요. 당시만 해도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아주 강했지요."

그는 당시 의식을 진행하면서 가슴 깊숙이 솟구치는 감동을 억누를 수 없어 눈물을 흘렸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상부상조 공동체 문화

1963년 조계환이 제2동화호 항해사 시절 사모아에서 동 료들과 찍은 기념사진.

원양어선은 한 번 출어하면 2개월 정도 바다에서 지내야 한다. 그 기간 돌발사고가 생기더라도 모두 선상에서 해결해야 한다. 귀항하는 시간도 그렇지만 경비가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같은 대양에서 일했던 우리 어선들은 소속 회사를 넘어 모두가 끈끈한 공동체 의식으로 서로를 도왔다고 한다. 만일 환자가 발생했을 때, 기관이나 기기가 고장났을 때, 주요 부품이 없을 때, 어구가 부족할 때 등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경우 해당 어선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를 통해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당시 어떤 배에서 환자가 발생해 무선으로 알리면, 같은 대양에 있는 배의 선장들이 방송에 참여했습니다. 각자 자신의 체험과 경험 등을 알려주는 거죠. 그러면 웬만한 의사 이상의 처방과 조치로 환자를 치료합니다. 의학백과사전을 참고하면 대부분 환자들이 잘 낫습니다. 기관이나 기기 고장에 따른 애로를 호소하면 그에 대한 기술자가 나타났지요."

조업 중 문제가 생긴 어선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해결책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기도 했지만, 배 시설이 고장을 일으켰을 때는 직접 배를 몰고와서 해결해주기도 했다. 망망대해에서 우리 어선들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그런 장면에서 다른 배로 건너갈 때는 뗏목을 이용하기도 했고, 서로 배를 붙여서 건너가기도 했다. 거대한 대양 위에서 우리 원양어선들은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어느 날, 어떤 배에 기관고장이 났어요. 그러면 어느 부분이다, 라고 방송을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배의 기관장이 잘 알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당시 원양어선들에는 경험이 많은 기관사가 부족했죠. 특히 냉동기를 잘 다룰 수 있는 경험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기관사관의 기술 미숙으로 조업을 제대로 못한 사례도 더러 많았지요. 냉동기 운전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배의 기관장이 잘 한다고 하면 그 배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한 뒤 뗏목을 타고 서로 왕래하고 그랬습니다. 치유하기 힘든 환자의 경우에는 귀항하는 동료 배편에 편승시켜 병원으로 보내기도 했구요. 배가 환자 치료를 위해 귀항하면 한 항차를 완전히 공치는 것을 면하게 했으니 큰 이득이 됐죠. 이렇게 대양에서 조업 중 공동체적으로 서로 도움을 주는 수산대학 동문들의 단결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동문의식이었죠."

■늘 고맙고 미안했던 가족

자신의 선상 생활을 이야기 하고 있는 조계환.

그는 10년 간 원양어선 선장으로 일했다. 그 기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바다 밑을 읽어내는 혜안을 가지기도 했다. 한 번 출항하면 3년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선장으로 근무하면서 번 돈으로 집을 장만하고 경제적 기반도 다졌다. 그러나, 함께 했어야 할 시간에 가족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내내 미안했다. 그 마음을 헤아려줬던 가족들이 그래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원양에서 조업 중일 때는 무선 전보로 가족과 소식을 주고 받았습니다. 당시에 체신부 소속 무선국이 부산, 목포, 군산 등 세 군데에 있었습니다. 모르스 부호로 전보통신을 하는 것이었죠. 지금의 통신수단에 비하면 정말 격세지감입니다. 가족과의 편지 왕래도 있었죠. 선상에 머물 때 써놓은 편지를 입항 뒤 가족에게 우편으로 보냈고, 가족의 편지 역시 입항했을 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들은 그의 일기가 되었다. 아내에게 전하는 편지로 일기를 대신한 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아주 각별해 보였다.

"제 둘째 아들의 별명은 알바코(날개 다랑어)라고 해요. 어종들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이었죠. 1965년 1월 1일 사모아 어장에 있을 때, 그냥 하루 쉴까 고민하다가 조업을 했는데 첫 낚시에 알바코가 올라왔어요. 그러고 있는데 (아내가) 둘째 아들을 순산했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둘째 녀석의 별명을 알바코로 지었죠."

그는 슬하에 삼남매를 뒀다. 첫 딸 출산은 지켜봤지만 둘째 아들과 막내딸의 출산은 소식으로 전해들었다. 세 아이의 첫돌 때에도 함께하지 못했다. 한창 예쁜 갓난 아이 때의 모습을 그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둘째와 셋째는 돌이 지난 뒤에야 첫 대면을 할 수 있었다. 그 미안함과 아쉬움을 그때그때 일기에 담았다. 특히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별 탈 없이 잘 자라줘 고맙다고 했다. 아내는 지금 세상을 달리 했는데, 그는 아내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서는 듯했다.


# 선상에서의 문화생활

- 유일한 여가는 독서…사람이 그리웠던 순간들

조계환은 선상에서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출항 때면 많은 책을 챙겨갔다. 또 배에서 있었던 일과 생각들을 일기로 적었다. 조업이 잠시 멈추는 시간에 책을 읽었는데, 때로는 인근에 있던 다른 어선에 책을 빌려주기도 했다.

"어장 이동을 할 때는 별 일이 없으니까 주로 책을 읽었던 것이 일기장에 나오더라구. 읽은 책들은 다른 배에 대여했죠. 하지만 한 번 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또 일기장에 보니까 (조업 중에 우리 배) 11척과 상봉했더군요. 서로 만나면 배를 꽁무니끼리 붙입니다. 그런 뒤 (배끼리) 건너다녀요. 저쪽 선장이 이쪽에서 하루 자고 갈 수도 있고, 내가 그쪽에 가서 하룻밤 쉬고 오기도 했습니다. 배 위에서 한 잔 마시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정을 나눴던 거죠."

그는 별다른 문화생활이 없었던 선상에서 책을 읽었던 일과 사람이 그리웠던 바다에서 우리 어선들과의 만남은 큰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채영희 부경대 국문학과 교수· 황경숙 부경대 외래교수

사업기획·참여: 부산시 수산자원과, 부경대 해양인문학연구소,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