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곳곳에 자리잡은 거리예술인
- 아름다운 연주·기발한 전시로
- 시민·여행자들에 즐거움 선물
- 골목·건물 조명의 스펙트럼 만나
- 마르케스데 라리오스 거리 빛내

50대에 들어서면 우리는 가끔이라도 '죽기 전에'라는 시리즈의 책을 읽곤 한다.

	스페인 말라가의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 거리 풍경이다. 사진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거리의 음악가.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팝송'에서 '창백함의 더 하얀 색조'(A White Shade Of Pale)라고 번역하기에는 너무 어색했던 노래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다.

"우린 가볍게 판당고를 추었고/홀을 가로질러 오가며 재주 넘을 때/멀미 같은 게 느껴졌어/허나 사람들은 더 춤추라고 큰 소리를 질렀고/방안이 웅성거리자/천장이 날아갈 것 같았지./우린 한 잔의 술을 더 청했고/웨이터는 쟁반에 술 한 잔을 가져왔었지…"(록 밴드 프로콜 하럼의 노래 중에서)

마치 재주넘기를 하듯 춤을 추는 판당고는 어디의 춤일까?

판당고는 발끝과 뒤꿈치로 탁탁 소리를 내면서 발놀림으로 리듬을 맞추는 남자와 박수를 치면서 양손과 몸으로 율동을 하는 여성이 한 쌍이 되어 춤을 추는 플라멩코의 일종이다.

플라멩코가 스페인 춤이라면 판당고는 안달루시아 지역 춤이다. 안달루시아 지역의 중심 도시는 말라가이다. 말라게냐는 말라가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말라가의 판당고를 뜻하기도 한다.


◇ 코스타 델 솔의 중심 도시, 말라가

	꽃을 들고 포즈를 취한 거리예술가.

말라가는 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안)의 중심 도시로서 지중해 해안 휴양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말라가는 기원전 13세기에 건설되어 외국의 식민지를 거쳐서 현재에 이른 문화유적의 도시이기도 하다. 말라가는 유대계 시인이자 철학자 이븐 가비롤(1021 출생 추정~1058년 타계 추정), 화가 파블로 피카소(1891년~1973년), 배우 겸 영화감독 안토니오 반데라스(1960년~)의 고향으로 문화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의 말라가에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는 것은 파블로 피카소도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아니라 거리예술가들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라가 거리예술가들은 가비롤 같은 시인도, 피카소 같은 화가도, 반데라스 같은 감독이나 배우도 아니다. 그들은 시민에게 문화의 혜택을 나누고 전하고자 하는 전문가이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시민이거나, 거리 동냥을 하는 무명들이다. 공적이나 사적인 예술단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예술 취미를 가진 시민, 거리 동냥을 하는 무명들은 골목에서 거리에서 연주나 전시 등을 하곤 한다. 무엇보다도 무명의 예술가들은 그 목적이 무엇이든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한다.


◇ 거리 빛내는 전문가·시민·무명

	건물 앞에 세워진 인상 깊은 조형물.

아름다운 음률의 선물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 또는 합창으로 귀를 즐겁게 하거나 인형극 공연으로 눈요기도 시켜주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모델로 분장한 거리예술가는 자신을 옛 고적에 나오는 조각상이나 유명인 등으로 치장하거나 둥그렇게 눈을 뜨게 하고 관객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모자를 쓰고 전신을 신문으로 감싼 채 앉아 있는 예술가는 기발한 상상으로 행인들을 놀라게 하고 흘러간 뉴스를 훑어보게 하고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흰색으로 채색한 전 가족들, 자전거를 잡고 서 있는 아들, 그 옆에 그네를 타고 있는 모녀는 시선을 빼앗고 주머니를 열게 한다.

전문가, 무명, 시민들의 거리예술을 더욱더 예술답게 만드는 것은 도시의 조명이다. 도시의 조명은 구시가 중심 마리나 광장에서 콘스티투시온 광장에 이르는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 거리에 불을 밝힌다. 그 불은 강렬한 단색들과 섬세한 곡선 및 굵은 직선을 엮으면서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에 터널을 이루고 있다. 길 전체를 마치 터널로 감싼 듯한 문양들과 달리 골목마다 그 특성을 표현한 네온사인 간판이 건물 사이에 매달려 있다. 때로 큰 건물이나 공공시설은 자기의 정체를 밝히려는 듯 출입구에 특이한 문양의 조명탑을 세우거나 걸치고 있다.


◇ 거리예술, 도시문화를 가꾸다

	신문지로 몸과 옷, 벽과 강아지 인형까지 도배한 행위예술가.

낮이 거리예술의 시간이라면 밤은 거리예술가의 예술과 빛(조명)의 빛깔이 만나는 시간이다. 그 만남은 도시를 휴양지나 문화유적지로 한정시키지 않는다.

휴양지, 문화유적지, 명소만 있다면 그 도시는 과거의 문화도시, 현재의 쉼터가 된다. 예술을 국공립 기관이나 전문 기관의 활동이라고 한다면, 많은 시민은 경비를 댈 뿐 그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거리예술은 구걸도 동냥도 아니고 물론 눈요깃감은 더욱더 아니다.

예술은 사람들을 때로는 즐겁게 하여 온유하게 하고, 때로는 화를 내게 하여 성난 행동으로 돌격하게 한다. 사람이 예술을 만들고 그 예술이 다시 도시를 만든다. 예전에는 말라가 사람들이 말라게냐를 만들었고 말라게냐가 다시 문화도시 말라가를 만들었다. 지금은 거리예술가들이 말라가의 도시문화를 다시 만들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 거리예술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과 빛이 만나는 지역으로는 어디가 좋을까? 색색깔로 만든 빛의 문양이 거리를 이루고 그 안에서 자유롭고 아름다운 몸짓이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산에도 빛 축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거리예술가들이 마음껏 자기를 표현하고 시민을 만난다면 부산도 거리예술가들 덕분에 도시문화가 거듭날 것 같다.

오늘도 말라가 거리에는 춤과 음악과 빛이 흐를 것이다.

민병욱·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