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 사람들의 즐거움이자
- 삶의 일부가 된 분수대
- 낮의 더위에 지친 행인도
- 밤의 설렘을 찾아나선 연인도
- 홀린 듯 올려다보는 물줄기

동에서 서로 실크로드를 따라서 사람들은 어떻게 갔을까?

말을, 낙타를 혹은 배를 타고 유라시아대륙을 건너가면서 옛사람들은 자취를 남겼다. 옛사람의 자취는 사막의 바람을 타고 유산이 되어 이야기로, 노래로, 그림으로, 어떻게든 그 무엇으로도 전해진다. 옛사람의 유산은 길 위에 흔적을 남기거나 길 속에 묻힌다. 옛사람과 함께 땅속에 묻힌 오아시스의 흔적은 어디에 있을까? 그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일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의 오래된 도시 사마르칸트를 상징하는 중심가의 분수대. 중앙아시아에서 유서가 깊기로 소문난 사마르칸트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분수, 사마르칸트를 장식하다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 사막과 반사막을 연결하는 오아시스 길의 중심지, 중앙아시아에서 인도에 이르는 불타로(붓다길)의 중심지였다. 더구나 사마르칸트는 중앙아시아에서 인도와 터키까지 지배했던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다. 사마르칸트에 남긴 옛사람들의 유산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그 건축물들, 레기스탄 광장과 세 개의 마드라사(고등교육기관), 아프로시압 성 등은 동서 '문화의 교차로'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만, 오아시스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아니, 오아시스는 사라지지 않고 분수로 되살아났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인가? 사마르칸트를 거의 3000년이 된 과거의 도시가 아니라 현대 도시답게 만드는 것은 분수대와 그라피티이다.

분수대와 벽화는 레기스탄 광장을 조금 지난 4차선의 교차로에서 시작된다. 교차로는 서로 길을 가려는 차들의 빵빵거리는 소리들, 녹슬고 찢긴 양철문을 손으로 치면서 사람들을 부르는 차장의 고함소리로 언제나 귀가 웅웅거린다. 더구나 한여름날의 정오 햇볕이 내리쬘 때, 사람들은 분수대로 모여든다.

■분수의 물, 음악의 숨결

조명을 받은 분수가 치솟는 불꽃 같다.

분수대는 옆 건물 벽면에 그려진 벽화를 향해서, 무더위에 지친 행인들에게 사정없이 물총을 쏜다. 분수의 물이 음악의 숨결을 따라 회오리바람처럼 흔들리다가 갑자기 용오름처럼 솟아오르다 떨어지면 젊은 남녀들은 괴성을 지르고는 전통 현악기 루바브를 켜는 미인도 벽화로 내달리다가 곧 되돌아와 더위를 식힌다.

미녀를 곁에 두고 있기에 가장 큰 분수대는 찻길을 건너 가장 작은 분수대와 마주한다. 분수대는 마치 언덕을 오르는 계단처럼 하나씩 앉아 있다. 언덕을 높이 오를수록 숨이 가빠지고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듯 분수대도 차츰차츰 커진다. 티무르 광장에 있는 티무르 왕의 동상과 나란한 곳에 두 번째로 큰 분수대가 자리한다. 나란히 있는 분수대가 더위를 식혀주는 동안 티무르 왕은 가장 큰 분수대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백성들과 음악을 연주하는 미녀들을 내려다본다.

백성은 왕을 올려다보지도 않고 발돋움하면서까지 미녀들에게 다가간다.

"발돋움하는 발돋움하는 너의 자세는 왜/이렇게/두 쪽으로 갈라져서 떨어져야 하는가.//그리움으로 하여/왜 너는 이렇게/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중략)//왜 너는/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떨어져서 부서진 무수한 네가/왜 이런 선연한 무지개로/다시 솟아야만 하는가"(김춘수의 시 '분수' 중에서)

무지개가 솟아오르지 못하는 밤이면 사람들은 미녀가 자리한 분수대로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맞는 분수대로 제각기 흩어진다. 한 계단씩 자리하고 있는 분수대는 밤이면 홀로 무지개를 만들지 않는다. 분수들은 음악의 숨결에 따라 아름다운 자태로 춤을 추면서 조명의 불꽃을 서로 다르게 쏘기 시작한다. 언덕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분수들은 낮의 무지개보다도 아름다운 갖가지 색깔로 밤의 어둠을 밝힌다.

■분수, 도시의 친구가 되다

분수대 곁에서 밤을 보내는 사마르칸트 사람들.

계단마다 하나씩 자리한 분수대에서 어둠을 밝히는 즐거움도 있다. 아이들은 솟아오르다가 내리기를 되풀이하는 물을 따라서 분수대에 서서히 다가왔다가도 갑자기 맑은 웃음을 터트리고 달아난다. 아이들은 물의 술래와 지치도록 숨바꼭질을 하고서 어둠을 지새운다.

연인들은 분수의 물결에 따라 같이 흐르는 음악에 맞춰 서로 몸을 비비대거나 흔들어대기도 한다.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아서 가족은 빛이 만들어내는 물의 춤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더위를 식힌다.

분수들의 불꽃에 대해 "사마르칸트에 세워져 있는/천문의 첫 번째 사원은/하늘의 비밀을 열고/그 신비로움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중략)/처음처럼 빛나며 발화한 별은/마지막으로 미소가 됐다"고 시인은 노래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문학 활동을 한 고려인 3세 마르따 김의 시 한 구절. 허 알레시아 역)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면 부산에 분수대를 만들자. 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는 하나인 채로 그대로 두더라도 물과 빛과 음악이 어우러진 황홀경을 보여주는 분수대를 만들자.

크고 작은 분수대를 여러 개 만들어서 여름 밤하늘을 밝혀보자. 세계 3대 분수 쇼라고 일컫는 두바이, 라스베가스, 몬주익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지 말자.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