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선비 발자취 따라 10㎞ 코스
- 1·2구간 3시간이면 둘러봐
- 화림동 계곡과 어우러진 절경
- 울창한 숲 암반 위 거연정이 백미

- 영귀정 지나 동호정 가는 길
- 춤추는 수양버들 트레킹족 반겨
- '달 희롱한다'는 농월정 서면
- 너럭바위 휘도는 물줄기에 감탄

경남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선비의 기품이 살아 있는 고장답게 정자와 누각이 매우 많다. 지금도 옛 선비가 풍류를 즐겼던 정자와 누각이 100여 개나 남아 있다. 선비문화탐방로에서 만나는 여러 정자와 서원들은 사대부의 풍류와 선비 정신 등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 3월 이 길을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한 데는 이런 연유가 있다. 선비문화탐방로는 1구간 거연정(군자정)~영귀정~동호정~경모정~람천정~농월정 6㎞(2시간 소요)와 2구간 농월정~구로정~오리숲~광풍루 4㎞(1시간 소요) 등 총 10.1㎞를 말한다.

	탐방객들이 영귀정에서 동호정으로 가기 위해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함양군 제공

■화림동 정자의 백미

선비문화탐방로는 선비문화탐방관을 거쳐 거연정에서 시작한다. 거연정(경남 유형문화재 제433호)은 화림동 계곡 정자 중에서 주변 경치가 좋기로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계곡과 바위가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금천의 암반 위에 정자가 마치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연정을 출발해 탐방로를 따라 걷는 탐방객들.

거연정에 가려면 '화림교'라는 조그마한 아치형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 아래로는 소(沼)처럼 잔잔한 물이 흐르며 옛 선비들은 이 물을 '방화수류천'(訪花隋柳川)이라 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자연에 머문다는 뜻의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으로, 울창한 숲을 병풍처럼 두른 암반 위에 세워져 산수화 속의 정물을 보는 듯 그윽하다.

거연정에서 봉전교를 건너 계곡 인근 소로를 따라 150m쯤 가면 영귀정이 나온다. '귀거래사를 읊는다'는 뜻이다. 맞은편 계곡에는 단아한 정취의 군자정(경남 문화재자료 제380호)이 암반 위에 서 있다. 영귀정을 지나 얼마 가지 않으면 농로가 이어진다. 왼쪽으로는 사과밭과 양파밭이 나온다.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다. 곧바로 동호정 가는 길이 이어지는데 이 구간이 가장 예쁘다. 길 양옆으로 수양버들이 춤을 추고 왼쪽 아래로는 화림동 계곡물이 시원한 물소리를 내며 굽이쳐 흐른다. 가을인데도 발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풍류를 즐기다

	풍류와 선비 정신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동호정.

영귀정에서 1.6㎞가량 가면 동호정(경남 문화재자료 제381호)이 있다. 1895년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인 이 정자는 화림동 계곡에 세워진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등에 업고 의주로 피난을 했다는 장만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890년에 건립했다. 장 선생은 서하면 황산마을이 고향이다.

동호정 앞에는 해를 가리는 천막처럼 생긴 큰 바위인 차일암(遮日岩)이 있다. 술을 마시며 즐기던 차일암에는 금적암(琴笛岩), 영가대(詠歌臺)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금적암은 악기를 연주하는 곳이고 영가대는 노래 부르던 장소다.

정자 천장에는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의 조각이다. 보통 용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여의주를 물고 있는데 이곳의 용은 물고기를 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거연정은 이름 그대로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옛 선비의 마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거연정.

거연정은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전오륜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640년 세웠다. '두문동 72현'이란 고려가 망하자 벼슬과 명예를 버리고 숨어든 72명의 선비를 뜻한다.

호성마을과 경모정 람천정을 지나면 발길은 동호정에서 3㎞쯤 떨어진 황암사에 이른다. 이곳은 정유재란(1597년) 때 황석산성을 지키기 위해 왜적과 싸우다가 숨진 당시 안의 현감 곽준, 함양군수 조종도 등 순국선열 500여 명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달을 희롱하다

	농월정.

황암사를 뒤로 하고 1㎞가량 걸으면 널따란 반석가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달을 희롱한다'는 뜻의 농월정이다. 농월정은 수많은 반석으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너럭바위 위 혹은 옆을 쉴 새 없이 흐르는 투명한 물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농월정은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知足堂) 박명부(1571∼1639)가 말년에 관직을 떠난 후 낙향해 지은 정자로, 시회(詩會)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한 곳이다. 몇 차례 중건을 거쳐 1899년 완성됐지만 2003년 소실돼 12년 만인 2015년 9월 복원됐다.

농월정 앞에는 3300여 ㎡ 규모의 월연암(月淵岩)이라 이름 붙은 거대한 너럭바위가 넓게 펼쳐져 있고 물줄기는 산자락을 S자로 휘감아 돈다.

농월정에서 1.3㎞가량 농로를 따라 걸으면 월림마을에 이르고 다리를 건너 1㎞가량 더 가면 길가에 아홉 노인이 모여 놀았다는 '구로정(九老亭)'이 나온다.

여기서 1.8㎞쯤 떨어진 금천변에 오리 숲이 우거져 있다. 오리숲에서 조금 내려가다 다리를 건너면 정면 5칸, 측면 2칸의 우람한 팔작지붕 누각이 자리하고 있다. '광풍루(光風樓)'다. 안의면 소재지에 있는 광풍루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양식을 간직하고 있는 누각이다. 1412년(태종 12)에 지은 누각으로 당시 이름은 '선화루(宣化樓)'였다. 1494년(성종 25)에 안의 현감으로 재직했던 일두가 중수한 뒤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김인수 기자 is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