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억 뜯어 해외여행·백화점VIP
- 친구는 돈 갚느라 고시원 전전

한 여성이 동창생에게 속아 19년간 자신이 번 돈을 갖다 주고 갖은 심부름까지 해주며 노예처럼 살았던 믿기 힘든 사연이 드러났다. 사연의 주인공인 A(여·44) 씨는 1994년 친구의 소개로 B(여·44)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부산의 한 실업계 고교 동창이었다. 정이 많았던 A 씨는 B 씨와 금세 친해졌다. 1997년 B 씨가 고교 동창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합의금이 필요하다고 3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자 딱한 마음에 돈을 건넸다. B 씨는 사채를 갚지 못해 협박을 당하고 있다며 400만 원을 더 부탁했고, 이 역시 들어줬다. 그 이후 A 씨는 B 씨의 악랄한 거짓말에 놀아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낮에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던 A 씨는 외환 위기로 회사가 문을 닫자 B 씨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B 씨는 A 씨의 사주가 나빠 굿이나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주변 사람까지 죽을 수 있다며, 자신이 맡아서 해줄 테니 돈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1998년 가족과 일본으로 건너간 A 씨는 12년간 게임장 등에서 궂은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이 돈을 B 씨에게 보냈다. A 씨가 2009년 한국에 돌아오자 B 씨는 "가족과 함께 있으면 칼부림 등 흉흉한 일이 생긴다"고 말해 가족과 따로 살게 한 뒤 유흥주점에서 일하게 했다. 또 A 씨의 성관계 동영상이 퍼져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채 6000만 원을 빌려 써 이자를 내야 하니 매일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A 씨는 6년간 매일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몇십만 원씩 B 씨에게 줬고, B 씨는 이를 장부에 기록했다. 또 A 씨는 B 씨가 제사에 필요하다며 음식 등을 사달라고 할 때마다 이를 갖다 줘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B 씨의 사기 행각은 우연한 기회에 들통났다. 목돈이 필요했던 B 씨는 A 씨를 위해 끌어 쓴 사채를 갚느라 식당에서 돈을 훔쳐 교도소에 수감됐다고 거짓말하고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돈을 받아냈다. 친구가 걱정됐던 A 씨는 지난 6월 부산구치소를 찾아가 B 씨의 신원을 조회 하면서 교도관으로부터 사기가 의심된다는 얘기를 들었고, 경찰에 신고한 끝에 자신이 19년간 속았음을 알게 됐다.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997년 7월부터 지난 6월까지 A 씨로부터 2389회에 걸쳐 7억8840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로 B 씨를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B 씨는 A 씨를 위해 굿을 하거나 제사를 지낸 적이 없고 갖다 준 돈과 음식을 고스란히 본인을 위해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A 씨가 친구를 위해 돈을 갚느라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어렵게 지낸 데 반해 B 씨는 가로챈 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니고 백화점 VIP 고객으로 대접받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