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적으로 덮고 기강해이
- 본청 감찰담당관도 보고 누락
- 지휘부 책임 소홀 떠넘기기도
- "신뢰 바닥…조직 쇄신안 시급"

경찰의 자정 기능이 마비됐다. 학교전담경찰관과 여고생의 성관계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담당 경찰서뿐 아니라 부산경찰청, 심지어 경찰청까지 사건을 알고도 조직적으로 은폐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강신명 경찰청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안전행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진땀을 흘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29일 경찰청과 부산경찰청이 밝힌 사건 경위를 살펴보면, 연제경찰서와 사하경찰서는 경찰서장의 묵인 아래 문제를 일으킨 직원의 사표를 수리해 사건을 덮어버리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였다. 서장이 사실을 알고도 직원의 사표를 처리한 연제서뿐 아니라 사하서 역시 경찰서장이 사건을 보고받고도 부산청에 보고하지 않았다. 학교전담경찰관 김모(34) 경장과 여고생(17)이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알게 된 담당 교사가 사하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담당 계장에게 이를 알렸고, 사하경찰서는 김 경장의 사표를 받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경찰청 감찰 결과, 사하서 담당 과장과 사하서장까지 이 사실을 보고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써 사하서장은 책임자로서 지휘책임 소홀은 물론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난까지 피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의 감찰 기능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연제서 청문감사관실은 경찰과 여고생의 부적절한 관계를 신고받고도 이를 경찰서장에게 보고하는 데 그쳐 사건 은폐에 가담했다. 부산청과 경찰청은 지난 1일 연제서 사건을 인지하고 해당 경찰서에 이를 확인했지만 경찰이 사표를 제출했고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묵과했다. 이에 대해 부산청 관계자는 "감찰 대상이 현직 경찰에 국한되고, 본청에 보고한 이후 별다른 지시가 없어 그냥 넘겼다"고 말해 본청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다. 조직의 잘못을 걸러내고 기강을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할 감찰 부서가 파렴치한 일을 저지른 경찰을 보고도 현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냥 넘겼고, 사건이 불거진 이후에도 침묵해 사실상 제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공권력을 상징하는 경찰의 자정 능력이 한심한 수준이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의 실망과 분노가 들끓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이 해당 경찰서, 부산청뿐 아니라 본청까지 감찰 대상에 포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신뢰를 잃어 진상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청 지휘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시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특단의 조직 쇄신안을 내놓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의대 최종술(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지휘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조직 쇄신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지휘명령과 보고가 즉각적이고 명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의사 전달 통로를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조직 전문가는 "일선 경찰서의 기강 해이도 문제지만 조직을 관리하는 지휘부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사건을 키운 측면이 있다. 이번 기회에 경찰 조직의 기강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 청장은 이날 사과문에서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성관계 경위와 보고 과정에서의 은폐 의혹 등 관련된 모든 사안을 원점에서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김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