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등거리 중간선 원칙"
- 헌재 권한쟁의 심판 청구
- 받아들여질땐 전남 쪽 이동
- 어민 조업구역 많이 늘어나

- 빨라도 내년 말 최종 결정
- "조속 해결로 피해 줄여야"

헌법재판소가 경남과 전남 간 해상 분쟁 권한쟁의 심판 심리절차에 돌입했다. 헌재는 전남지사와 여수시장 등 피청구인은 물론 행정자치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법무부 등의 해상 경계선에 대한 사실조회 의견서를 검토 중이라고 29일 밝혔다.

	지난해 7월 경남 남해군 미조항 수협 앞에서 열린 경남 어민들의 '어업권 사수 집회'. 경남과 전남 간 '해상 조업 경계' 다툼은 현재진행형이다. 연합뉴스

경남도는 지난해 12월 경남지사와 남해군수가 청구인으로 나서 전남지사와 여수시장을 상대로 해상 경계 권한쟁의 심판을 헌재에 청구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상 표시선을 경남과 전남 간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의 무효화를 헌재에 요구하는 게 경남도의 권한쟁의 심판 청구 핵심 요지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6월 대법원은 경남과 전남 간 해상 경계가 존재하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상 표시선 기준을 경남과 전남 간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 해상 경계선 vs 등거리 중간선

경남도가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게 된 주된 이유는 국토정보지리원의 해상 경계 표시를 해상 경계선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남도는 남해군 세존도까지 확장한 해상 경계구역이 전남도 관할이라고 판단한 대법원의 판결은 우리나라 어느 법률에도 명확한 규정이 없는 여건을 고려하면 법적인 해상 경계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1973년 지형도를 기준으로 단순하게 그어진 해상 경계를 인용한 판결은 맞지 않고 1982년 이전 수산자원보호령으로 정해진 남해군 남면 이리산 정상에서 여수시 작도를 수직으로 이은 시·도 경계가 적절하다는 설명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지형도상의 해상에 표시한 선은 도서의 소속을 표시한 단순 기호일 뿐 지방자치단체의 관할 구역을 판단하는 데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공식 견해를 내놓고 있다. 행정구역 설정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도 "현존하는 대한민국 어느 법률에도 해상 경계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상 기준선은 법적 근거가 없어 시·도 경계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대법원 판결은 지난해 7월 30일 충남 홍성군과 태안군 해상 경계 분쟁과 관련한 헌재의 결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경남도는 주장한다. 헌재는 태안과 홍성 간 해상 관할권을 나눌 때는 국가기본도의 해상 경계선(국토지리정보원의 해상 경계선)이 아닌 '등거리 중간선 원칙' 등 형평성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헌재는 현행법에는 해상 경계를 규정하는 명백한 조항이 없는 점을 들어 해상 경계를 나누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헌재는 해상 경계를 나누는 기준으로 ▷분쟁 관할 지자체 간 등거리 중간선 ▷관련 법령의 현황 ▷연혁적인 상황 ▷행정권한을 행사한 내용 ▷사무처리의 실상 ▷주민의 사회·경제적 편익 등을 제시했다. 헌재는 지자체 간 해상 관할권은 '등거리 중간선'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이 같은 기준으로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등거리 중간선은 두 지자체의 관할 해안선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을 연결한 선을 말한다. 이 선을 근거로 해상 경계를 나눠야 한다는 등거리 중간선 원칙은 국제적 해상 경계 분쟁을 조정할 때 가장 유력한 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해상 경계선에 관한 분쟁에서 종래에는 국가기본도의 해상 경계선을 불문법상 경계선으로 인정해 왔다"면서 "홍성·태안 해상 경계선 결정은 선례를 변경해 형평의 원칙에 따라 해상 경계선을 확정해야 한다고 본 것"이라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경남도는 이에 따라 경남과 전남 간 해상 경계도 남해군 세존도와 여수시 작도 사이의 등거리 중간선으로 정해져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해상 경계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상 표시선보다 전남 쪽으로 5㎞ 정도 옮기게 돼 경남 어민들의 조업구역이 많이 늘어나게 된다.

■"헌재 조속 결정으로 갈등 해소를"

헌재가 위헌법 심판 또는 권한쟁의 심판 청구 사건을 결정하는 데 최소 1년 이상 걸린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청구일로부터 결정까지는 보통 2년 이상 걸리게 된다는 게 법률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같은 점으로 미뤄볼 때 경남도가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 결정은 이르면 내년 말께 내려질 전망이다. 그러나 전남지역 어민과 지자체, 정치권 등이 "대법원 판례를 인정하지 않고 경남도가 해상 경계 조정을 다시 시도하려는 것은 동서화합을 해치고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헌재의 결정이 더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경남도 관계자는 "지형도상 해상 경계선은 지형도를 만든 국토지리정보원이나 행자부에서도 지자체 간 관할구역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데도 대법원은 지형도를 기준으로 판결함으로써 경남지역 어민들이 수십 년째 조업하던 황금어장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헌재가 충남 홍성과 태안 간 해상 경계 분쟁 결정취지의 연장 선상에서 경남과 전남 간 조업구역 분쟁 권한쟁의 심판청구도 결정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경남도 김춘근 어업진흥과장은 "정부가 지자체 간 소모전을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된다. 헌재가 이른 시일 안에 논란을 정리함으로써 어민들의 조업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재한 기자 m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