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조선 직책높은 양반 자제

- 과거 거치지 않고 관리로 채용

- '대물림 권력'이 곧 자본인 세상

얼마 전 법조인을 양성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 실태 조사에서 지난 3년간 합격자 중 24명이 부모나 친인척의 신상 정보를 자기소개서에 적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고위공직자나 법관 출신 등 소위 '좋은 스펙' 가족을 둔 응시생들은 특혜를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이에 조선 시대 신분세습제인 음서제에 빗대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금수저' 논란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데,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음서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공식적인 '금수저', 음서제

음서제란 고려·조선 시대 공신 또는 현직 당상관(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정3품 이상의 고위관직)의 자손이나 친척을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는 제도였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과거급제'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지 않더라도 직책이 높은 양반가 자제들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이를 공식적인 제도로 채택한 것은 고려 성종 때부터였다고 하니, 음서제는 사회적 비판이 나올 수 없는 그야말로 합법적인 제도였던 셈이다. 그 범위는 친가와 외가를 모두 포함할 정도로 넓었으며, 수양아들과 사위·조카·동생도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음서제를 통해 선발되는 직책은 '음직'이라 일컬었다. 음직의 선발 원칙은 '1인(人) 1자(子)'로, 1인당 1명만을 추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음직으로 선출된 관리는 과거급제자보다 월등히 많았으며, 대부분이 5품 이상의 관직에 오르는 것은 물론 50~60%는 재상(임금을 돕고 모든 관원을 지휘·감독하는 2품 이상의 벼슬)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소위 '명문가' 자제들 대부분은 음서제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음서제는 신분 높은 양반들이 계속 자신의 지위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공식적인 제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음서제로 공직에 진출하는 양반 자제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양반가 자제들의 불만도 커졌다. 조선시대에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대가제'라는 것을 별도로 마련했다고 한다. 대가제는 정3품 당하관 이상의 관료가 자신에게 부여된 자격을 자제, 사위, 조카 중 1인에게 넘겨주는 제도다. 실질적인 관직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대가제로 과거에 급제한 이들은 승진이 무척 빨랐다고 한다. 

■'대물림'의 권력이 곧 자본

음서제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고려·조선 시대 양반과 평민을 공식적으로 구분하는 제도였다. 후손에게 어느 정도의 대물림을 해줄 수 있는가가 곧 가문과 신분을 결정짓는 잣대였다. 이러한 권력을 가지지 못한 하급 양반들은 과거제도가 유일하게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경로였다. 양반이 아니면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이와 같은 권력의 세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사회자본'(지배계층의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라 칭하고, 인간사회는 끊임없이 이와 같은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곳이라 분석했다. 

로스쿨 입시생의 자기소개서 논란에서 드러나듯이,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 학교 출신인지, 어느 지역 출신인지, 심지어 어떠한 동호회에 가입되어있는지에 따라 내가 가진 자본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현대사회는 '족보' 하나만으로 신분이 확고하게 결정되었던 조선 시대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신분제 사회가 아닐까?

박선미·사회자본연구소 대표

김정덕·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NIE 강사

■생각해 볼 점

음서제의 역사를 살펴보니,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도 '금수저'는 여전히 존재했네요. 하지만 오늘날의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것 같은데요.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를 정리해볼까요?

-음서제는 왜 시행됐을까?

-고려·조선 시대 음서제는 왜 지금의 '금수저'처럼 비판을 받지 않았을까?

-음서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경로로 공직에 진출했을까?